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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행적 대대로 알리려 시비 옆에 ‘단죄비’ 세웁니다”

등록 2020-08-06 18:43수정 2020-08-07 02:05

[짬]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전북지부장

김재호 지부장이 김해강 시비를 가리키고 있다. 박임근 기자
김재호 지부장이 김해강 시비를 가리키고 있다. 박임근 기자

“시민들이 그의 친일행적을 제대로 알도록 김해강 시비(詩碑) 옆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국치일인 오는 29일 전북 전주 덕진공원에 있는 시인 김해강의 시비 바로 옆에 시인의 친일행적을 담은 단죄비를 세우는 김재호(55)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의 다짐이다.

김 지부장은 내년 3·1절 즈음에 김해강 시비를 철거하는 방향으로 전주시 등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비를 세운 사람들 쪽에서는 소극적이어서 상황에 따라 1993년 세워진 이 시비의 철거가 늦춰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철거 여부를 따지기 위한 여론조사를 하려면 일제를 칭송한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기에 그는 단죄비 설치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2011년에 지부장을 맡은 그는 2012년과 2016년에도 단죄비를 세웠다. 단죄비는 친일 행적을 알리는 안내 현판 모습이다. 8년 전에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에 있는 반민족행위자 윤치호 시혜불망비 옆에 그의 친일행적을 알리기 위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안내현판을 세웠다. 윤치호가 한때 지식인으로 독립협회 등 애국계몽활동을 지도하고 투옥되기도 했지만 1915년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특사로 석방돼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내용 등이 새겨있다. 4년 전인 2016년에는 항일의병을 초토화하고 명성황후 시해를 도운 이두황의 단죄비를 세웠다. 그의 묘지가 있는 전주시 중노송동 기린봉 초입 주변에 설치했다. 2016년은 이두황이 숨진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백년만의 단죄,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두황’이라는 제목으로 친일행적을 낱낱이 기록했다.

“덕진공원은 전주시민의 허파와 같은 곳입니다. 공공재인 이 공원에 공동체를 파괴한 사람은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특히 여기에는 ‘척양척왜’를 외친 동학농민혁명 3대 지도자인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장군의 동상 또는 추모비가 주변 100m 안에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신석정 시인의 시비가 있는데 그가 친일시를 썼다는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신석정 시비가 김해강 시비보다도 크기가 많이 작습니다.”

국치일 29일에 김해강 시인 단죄비
전주 덕진공원 시비 옆 세우기로
윤치호 이두황 이어 세번째 설치
“자살특공대 칭송 등 친일시 여럿
시비 철거도 전주시와 협의 중”

월 10만원 컨테이너가 지부 사무실

김해강 시인은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명 ‘가미카제’로 불렸던 자살특공대를 칭송한 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를 남겼다. 진주만에서 전사한 일본군 9명의 죽음을 칭송해 1942년 <매일신보>에 실렸다. ‘특별공격대원의 위훈을 추모하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가 쓴 ‘아름다운 태양’, ‘호주여’, ‘인도 민중에게’ 등도 일제의 황국신민화와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고 있다. 1962년에 만들어진 ‘전북도민의 노래’도 작사했다. 김 시인은 2002년 발표된 친일문학인 42인 명단에 선정됐지만,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김재호 지부장. 박임근 기자
김재호 지부장. 박임근 기자

“그의 제자 등은 친일인명사전에 들어가지 않은 점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전 발간 때 우여곡절이 많았고 사전 편찬위에서 개정증보판을 준비 중입니다. 사전에 없다고 친일행위가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시를 보면 일제를 노골적으로 찬양한 표현이 많습니다. 일제가 중일전쟁 등에서 계속 승리하니까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고 판단하고 돌아선 것이죠.”

그는 단죄비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든 일제잔재 청산에도 주력했다. 전주시는 지난해 덕진구 ‘동산동’ 이름을 105년 만에 ‘여의동’으로 바꿨다. 동산동은 1907년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기업 창업자의 장남이 자신의 아버지 호인 ‘동산’(東山)을 따 창설한 동산농사주식회사 전주지점이 위치했던 데서 유래했다. 김 지부장의 이런 문제 제기에 시가 화답한 것이다.

그가 사명감으로 맡았다는 지부의 사무실은 월세 10만원인 컨테이너다. 회원이 500~600명이지만 급여를 줘야 하는 상근자가 없다. 지부장인 그가 무보수로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과거에는 강연 요청 등도 있었지만,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그마저도 없단다. 그러나 역사 정의를 위해 이 시대의 제2독립군이라는 결기로 임하는 그는 “친일청산의 끝은 민족의 통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인 김해강을 아낀다면 그의 시비를 더는 여기에 놔두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진실은 누군가에 의해 드러납니다. 친일파 대부분이 그렇지만 그가 자신의 행적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의 시비를 반드시 철거해야 합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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