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가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비영리 단체를 위한 비영리 단체이죠.”
황신애(48) 사단법인 한국모금가협회(이사장 허탁) 상임이사가 자신이 속한 단체를 두고 한 말이다. 오는 5월 창립 7년을 맞는 협회는 교육과 컨설팅으로 사회복지나 국제개발, 문화예술, 대학, 병원, 시민사회 쪽 비영리 기관이나 단체의 후원금 모금을 돕고 있다. 협회 회원은 200여명이며 매년 1500~2000여 명이 협회가 마련한 강좌를 수강한단다.
지난해 말 <교육방송> 전파를 탄 ‘상속의 시대’ 강연을 토대로 최근 책 <나는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쓴다>(이비에스 북스)를 펴낸 황 이사를 지난 1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의 모금 인생은 1999년 모교인 한국외대에서 대학발전 기금을 모으며 시작했다. 그 시절엔 보기 힘들던 모금 이벤트를 열고 고액 후원이 가능한 동문 명단까지 만들어 개별 접촉해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거뒀다. 2007년부터 3년간은 서울대발전기금 모금캠페인에 합류해 목표액을 뛰어넘는 3550억 원을 모았다. 이어 건국대를 거쳐 월드비전에서 모금 실무를 하다 2017년에 협회 활동에 전념하려고 퇴직했단다. 그렇다고 모금 실무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지금은 금융소외자를 돕는 사회연대은행(대표 김용덕)과 노숙인 지원 단체인 바하밥집(대표 김현일) 등 크고 작은 엔지오들을 돕고 있어요. 모금 설명문도 만들고 적절한 기부자에게 다가갈 방법도 찾아주죠. 작은 단체들은 ‘왜 우리 단체를 후원해야 하는지’에 관해 이해되도록 말이나 글로 잘 표현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는 2007년에 서울대발전기금 모금 실무자로 스카우트된 뒤 명함에 ‘펀드레이저’란 다소 낯선 영어단어를 새겼다. “우리말로 ‘기금모금활동 전문가’ 정도 됩니다. 직장에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활동가 말고 직업의식을 가지고 하는 분들을 말하죠. 국내는 천여 명 이상 될 겁니다. 엔지오 중에는 국제개발 쪽이 모금 액수도 크고 모금도 잘합니다. 모금 선진국의 잘 된 사례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그가 지금껏 자신이 속한 팀 단위로 끌어낸 기부금은 5천억원이 넘는다. 개인적으로 끌어낸 기부금만 계산하면 2천억원쯤 된단다.
무엇이 그를 ‘모금의 달인’으로 만들었을까? “모금을 좋아했어요. 대학 교직원들은 대개 보조적인 일을 해 존재감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모금은 제가 주도해 할 수 있고 또 학교나 대학 후배들처럼 애정이 있는 대상을 위한 일이잖아요. 서울대에서 일할 때도 제가 서울대 동문이라고 생각하고 일했어요. 모금가에게는 ‘동기 부여’가 가장 중요해요. 왜 기부해야 하는지 모금가도 믿지 않으면 상대를 설득할 수 없어요. 상대를 확신시킬 때 기부도 끌어낼 수 있죠.” 이런 말도 했다. “모금가들을 거칠게 나누면 사람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등 조사분석에 강한 유형, 기부자들을 잘 보살피고 북돋는 유형 또 적절하게 제안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헌터 형이 있어요. 저는 이 세 성향을 다 가진 것 같아요. 사교성도 있고 기회도 안 놓치고 조사분석도 철저한 편이었죠.”
한국외대·서울대·월드비전 등서
15년 동안 5천억 원 기부금 모아
7년 전 협회 만들어 교육·컨설팅
“모금가 윤리·투명성 갈수록 커져”
‘나는 새해 되면 유서 쓴다’ 책도
“퇴직 무렵 유언장 쓰는 게 좋아”
그는 책에 만 36살 되던 2009년부터 매년 유언장을 쓰고 있다고 고백했다. 죽음 이후 재산을 내놓기로 약속하는 유산 기부 상담을 하면서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단다. 그가 지금껏 다룬 유산 기부는 15건 정도다. “유산 기부자 중 세 분은 남은 가족이 없어 장례식 때 염하는 자리에도 있었죠.” 그가 보기에 유언장 쓰기 가장 좋은 시기는 직장에서 퇴직할 무렵이다. “죽음은 통제 불가능하잖아요. 재산 처분이나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아 사후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걸 일하면서 많이 봤어요. 유언장은 또 삶을 담백하게 정리하는 의식입니다. 작은 회고록이죠. 쓰면서 남은 자신의 삶에 뭐가 소중한지도 알 수 있어요.”
그는 한국에서도 유산 기부가 점차 늘고 있지만 “영국이나 미국 등과 견주면 매우 미미하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정확한 통계도 없어요. 유산 기부가 그나마 활발한 곳이 대학인데 서울대를 보면 매년 여섯 건 정도 상담하는 것 같아요. 월드비전도 비슷해요. 하지만 영국은 유산 기부가 전체 기부의 20~30% 정도 됩니다. 미국도 8~9%이죠. 영국은 10년 전부터 정부와 기업인들이 함께 유산의 10%를 기부하는 ‘레거시 10’ 캠페인을 펼치고 있어요. 유산 기부자에게는 상징적인 수준일지라도 상속세 감면 혜택도 줍니다.”
왜 모금 실무에서 물러나 협회를 만들었냐고 묻자 황 이사는 먼저 “모금의 사회적 필요성이 커지면서 윤리와 투명성 문제가 커졌다”고 말했다. “서로 믿고 기부하기 위해선 윤리나 책무성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정립해야죠. 모금하다 보면 성과에 집착해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해요. 모금가들이 법과 제도를 잘 알지 못해 어기는 일도 있고요.” 그는 체계적인 모금가 교육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활동에는 기부금이 잘 오지 않아요. 대신 금방 죽을 것 같은 불쌍한 아이 모습을 보여주면 돈이 몰립니다. 하지만 이런 기부는 오래가지도 못하고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지지도 못해요. 노동이나 인권, 다문화 단체와 같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쪽으로 기부금이 가게 하려면 후원 명분 설명이나 독려 방식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기부자와의 소통 방식도 알아야 하고요. 이런 기부는 사회를 건강하게 바꾸고 기부자도 성장시키죠.”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는 책에서 “기부 디엔에이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썼다. 어떤 사람들이 기부할까? “기부의 동기가 발현되는 계기는 다 다릅니다. 대개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다 심각한 위기나 사건을 겪으며 삶의 안정감이 흔들릴 때 타인을 돌아보는 것 같아요. 암이 발병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자녀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 타인의 삶이 훅 자기에게 들어오는 거죠. 이는 일종의 사회화 과정이죠. 타인의 삶에서 사회 문제를 보니까요. 기부 경험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자질을 키우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아이를 기부하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와 정기적으로 기부에 참여한다면 성인이 돼도 자연스럽게 남을 도울 겁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낯선 일을 하는 게 어렵잖아요.”
‘기부하는 사회’로 가기 위한 제도적 개선책 하나만 이야기해달라고 하자 그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기부자나 모금단체, 정부가 다 기부에 대한 이해가 달라요. 서로 출발점이 다른 거죠. 이런 차이를 줄이기 위한 공론화의 장이 먼저 필요해요. 지금 정부 안에 (공론화를 위한) 공식 창구도 없어요. 기부금 관리는 국세청과 기재부 영역이고 모금 행위 관리는 행안부에서 해요. 모금 단체들이 등록한 행정 기관도 흩어져 있어요. 미국만 해도 국세청이 통합해 관리하고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따로 비영리 통합 관리 기관을 만들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