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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목놓아 외쳤던 ‘통일의 문’ 포기하지 않고 열테니 편히 쉬소서”

등록 2021-09-12 20:49수정 2021-09-12 20:52

[가신 이의 발자취] 고 강창덕 선생님 영전에
지난 2007년 개성공단 방문 때 북쪽 안내원과 함께한 고 강창덕(왼쪽 둘째) 선생과 필자(오른쪽 둘째) . 김두현 의원 제공
지난 2007년 개성공단 방문 때 북쪽 안내원과 함께한 고 강창덕(왼쪽 둘째) 선생과 필자(오른쪽 둘째) . 김두현 의원 제공

지난 2007년 개성공단 방문 환영오찬이 열린 봉동관에서 고 강창덕(오른쪽 둘째) 선생이 “통일을 위하여” 건배사를 외치고 있다. 김두현 의원 제공
지난 2007년 개성공단 방문 환영오찬이 열린 봉동관에서 고 강창덕(오른쪽 둘째) 선생이 “통일을 위하여” 건배사를 외치고 있다. 김두현 의원 제공

가신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났지만 벌써 그립습니다 . 야성 강창덕 선생님.

당신께서는 분단과 독재로 어두웠던 우리 현대사를 묵묵히 비추는 들별 ( 野星 ) 이셨습니다 . 당 신께서는 1944 년 여름 친구들과 더불어 만주독립군의 활동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첫 투옥이 되신 이래 1974 년 세칭 ‘ 인혁당 재건위 ’ 사건에 연루될 때까지 7번의 투옥과 13 여년의 수감생활을 하셧습니다 .

아무리 타고 난 신체가 건강하고 정신이 올곧아도 보통 사람이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지난 6일 95살 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께서는 늘 청년이셨습니다 . 그랬습니다 . 당신은 영원한 청년이셨습니다 .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젊은 시절 품었던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 늘 청년처럼 불꽃 같은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

당신의 이상은 민중이 주인되는 민주세상과 남북이 하나되는 자주적 평화통일세상이었습니다 . 이를 위해 당신은 일곱 번의 투옥을 당하셨고 늘 삶은 곤궁하셨습니다 . 곤궁한 삶의 가운데서도 항상 웃음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

당신은 후배들과 막걸리 한잔 나누기를 즐기셨습니다 . 지역 민주화운동의 대원로였지만 어떤 자리에 있건 어떤 운동을 하건 가리지 않고 수십년 어린 후배들을 동지라고 따뜻하게 불러주셨습니다 . 막걸리잔 몇 순배가 돌아가면 노래가락을 흥얼거리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저 역시 2000년 전후 사회운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습니다. 2003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창립을 하며 저는 상근자로 선생님을 고문으로 모셨습니다. 2008년 팔순 생신잔치를 챙기면서 가족처럼 가까워졌고 2011년엔 44살 늦깍이 결혼 때 주례도 해주셨습니다

고 강창덕(오른쪽) 선생은 1991년 김대중(왼쪽) 총재의 신민당을 비롯해 내내 민주당 계열의 정당에서 활동했다. 사진은 퇴임 이후인 2006년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가 대구를 방문했을 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다. 유족 제공
고 강창덕(오른쪽) 선생은 1991년 김대중(왼쪽) 총재의 신민당을 비롯해 내내 민주당 계열의 정당에서 활동했다. 사진은 퇴임 이후인 2006년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가 대구를 방문했을 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다. 유족 제공

당신의 운동적 삶은 다른 운동가의 삶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 젊은 시절 일찍이 정당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1956 년 진보당 대통령 후보 조봉암 경산군 선거사무장으로 당시 전국에서 제일 높은 70% 이상의 득표율을 이끌어내었고 1960 년에는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산군에 제 5 대 민의원 후보로 직접 출마도 했습니다 . 1991 년에는 평민당 ( 김대중 총재 ) 과 신민주연합당 ( 준 ) 이 통합하여 출범한 신민주연합당(신민당) 전당대회의 임시의장을 맡기도 하였고 이후 민주당 계열의 정당에서 정당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였습니다 . 정당에 몸을 담으면서도 이상을 이야기하셨고 본질적 문제 제기를 하면서도 현실정치의 역할을 인정하셨습니다 .

고 강창덕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전 이사장이 지난 4월9일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 묘지에서 열린 인혁당 46주기 추모제에서 "통일의 꿈"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 평화뉴스 제공
고 강창덕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전 이사장이 지난 4월9일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 묘지에서 열린 인혁당 46주기 추모제에서 "통일의 꿈"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 평화뉴스 제공

몇 년 전 당신과 함께 ‘ 들별 강창덕 통일학교 ’ 를 구상하고 논의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 당신의 꿈은 통일된 조국에서 하루라도 살아보는 것이었습니다 . 혹,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후배들을 길러내기 위해 작은 통일학교라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

2007 년 당신과 함께 개성을 방문하였습니다 . 남북이 함께 작은 통일을 만들어가던 개성공단을 둘러보며 당신은 무척 감격해하셨습니다 . 개성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음식점 봉동관에서 열린 환영오찬 자리에서 ‘ 통일을 위하여 ’ 라며 목청껏 건배사를 외쳤습니다 .

당신이 그토록 목청껏 외쳤던 통일의 문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 불의에는 추상 같고 역사 앞에서는 당당했지만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당신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후배들이 있습니다 .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당신의 모습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이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 변화를 중히 여겨셨던 당신의 지혜를 배우고자 하는 운동가들이 있습니다 .

당신께서 이루고자 했던 민중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세상 , 남북이 하나되는 평화통일의 세상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 이제 어두운 길 밝히며 분단과 독재의 현대사를 헤치고 나가셨던 고단한 삶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

김두현/대구 수성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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