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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이름처럼 한국 서양사학계 ‘긴 돌’ 놓고 천국 기록하러 떠나시다”

등록 2022-02-14 19:09수정 2022-03-17 11:58

[가신이의 발자취] 고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 영전에
고 이영석 교수가 2020년 여름 서울 서촌의 푸른역사 출판사를 방문했을 때 모습. 푸른역사 제공
고 이영석 교수가 2020년 여름 서울 서촌의 푸른역사 출판사를 방문했을 때 모습. 푸른역사 제공
마지막 순간까지 ‘병상일기’ 기록
“죽음까지 역사로 만든 경이로움”

모든 사람은 죽는다. 사람에게 죽음은 확실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은 불확실하다. 지난 2월 13일 서양사학자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의 확실성과 삶의 불확실성을 일깨워준다.

역사가는 죽음을 극복하는 사람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역사가들이 자신의 역사가로서 걸어온 삶에 대한 기록을 ‘에고 역사’(ego d'histoire )로 기술한 책이 있다. 책 제목은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피에르 노라 역음, 이성엽 외 옮김, 에코 리브르, 2001)이다. 책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자크 르 고프는 “역사란 죽음과 대항한 싸움이다. 역사가는 죽음과 떨어져서 과거에 잠겨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좀 더 오래 의식적으로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교수가 돌아가시기 전날 마지막 모습을 뵙기 위해 전주행 기차를 탔다. 가는 내내 생각했다. 사경을 헤매는 선배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하나는 확실하다. 그동안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 드린다는 인사는 꼭 하리라. 그러면서 역사가로서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었다. 아마 물어도 대답은 못하겠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요새는 많이 생각한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앞으로 나에게 남은 가장 큰 목표이자 염원은 의식을 갖고 죽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가장 멋진 죽음은 호기심으로 죽음에 드는 것이다. 생전에 오직 단 한번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죽음이다. 인생은 여행이지만, 죽음이 삶의 목적지는 아니다. 경험해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또 다른 곳으로 가는 여행이 죽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뼛속까지 역사가인 이 선배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마지막 여행을 어떻게 하고 계실까? 병원에 도착해서 선배의 완전 노인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나니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런데 선배가 노트북에 써놓은 ‘병상일기’를 사모님이 보여준다. 아, 선배는 죽음까지도 역사로 만들고자 기록을 남겼구나. 의식이 있고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과거를 기록한 선배는 정말 자신이 썼던 자전적 역사 책 제목처럼 <삶으로서 역사>(아카넷, 2017)를 사셨구나.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한지? 나로서는 경이롭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죽음은 삶의 유일한 최고 발명품일지 모른다”(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는 명언을 남겼다. 이 선배는 잡스가 축사의 마지막 말로 했던 것처럼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배고프게 우직하게 살아라) 역사가의 삶을 살았다. 동아시아 역사학의 아버지 사마천은 역사가로서 삶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란 결국 후손을 위해 남기는 죽음사용설명서다. 우리는 그것을 삶의 나침판으로 삼고 인생의 여행을 한다.

선배의 이름 영석(永石)은 길 영에, 돌 석이다. ‘긴 돌’이란 뜻이고, 전자우편 아이디도 롱 스톤(긴 돌)이다. 선배는 생물학적으로 결코 긴 삶은 아니지만, 진정 한국 서양사학을 위해서는 긴 주춧돌을 놓으셨다. 선배가 학문적으로 깔아놓은 긴 돌이 초석이 되어 후학들이 멋진 한국 서양사학의 업적을 쌓아올릴 거라 믿는다. 형은 가셨지만, 형과 나눈 대화 그리고 따뜻한 마음은 아직 내 안에 있다. 형을 생각하면, 마지막까지 불태운 역사가로서 불꽃이 나를 환하게 만든다. 형은 천국에도 역사가 있으면 또 열심히 기록할 것이다. 천국으로 좋은 역사가 한 분 가셨네요. 부푼 기대를 안고 다음 여행지로 잘 떠나세요. 형, 안녕.

김기봉/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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