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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영원한 청년의 마지막 말씀 ‘참사랑은 정의’ 크게 울립니다”

등록 2022-03-09 20:47수정 2022-03-17 11:57

[가신이의 발자취] 고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기리며
지난 2021년 3월21일 이화여대 대학교회 강단에서 사순절 초청자로 말씀을 하고 있는 고 서광선 목사. 마지막 설교가 됐다. 이화여대 제공
지난 2021년 3월21일 이화여대 대학교회 강단에서 사순절 초청자로 말씀을 하고 있는 고 서광선 목사. 마지막 설교가 됐다. 이화여대 제공

지난달 26일 소천한 고 서광선 선생을 기리는 내 맘에 떠오르는 첫 번째 인상은 항상 푸르른 노송 같은 ‘늙지 않는 젊은이’ 라는 인상이다. 서 교수가 동석한 대화 자리엔 언제나 유머가 넘쳤고, 80~90대를 살아가면서도 20~30대 청년인듯 나이를 잊은 사람처럼 영원한 청년 감성을 잃지 않으셨다.

서 교수를 처음으로 뵙던 계기는 1970년대 중반기, ‘한국기독교청년회 (YMCA) 목적문’ 작성 기초연구위원으로서 만남이었다. 그때 강문규 총무님의 열정에 응답하여 서남동, 현영학, 서광선, 김용복 박사 등 선배 선생님들과 더불어 필자도 말석에 참석하였다.

‘한국기독교청년회 목적문’ 은 그 시대의식과 새로운 시민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명문으로서 온세계 와이엠시에이 회원국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주목을 받았다. 1976년에 재정되었던 불과 30 자 단어로 구성된 ‘목적문’ 은, 서 교수를 비롯한 당대 기독교 지성인들의 비전, 열정, 책임적 결단, 그리고 복음의 본질과 실천행동 지침을 담고 있다. ‘목적문’ 을 읽어보면 서 교수의 체취가 풍겨 난다. 그는 ‘철학적 신학자’ 지만 그의 신학은 ‘목적문’ 속에 다 담겨있다. 중요한 열쇠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직, 역사적 책임의식, 생명에 대한 감성, 사랑과 정의와 평화, 민중의 복지, 민족의 통일,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총괄적 비전으로서 ‘하느님의 나라’ 실현이었다.

1976년 ‘한국YMCA 목적문’ 작성 기초연구위원이었던 고 서광선 교수가 2013년 4월 YMCA 새로운 100년을 계획하는 사업협의회 공동대표로서 37년 만에 개정하게 된 목적문의 초안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안재웅 전국연맹 이사장, 서 교수,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남부원 전국연맹 사무총장. 한국YMCA전국연맹 제공
1976년 ‘한국YMCA 목적문’ 작성 기초연구위원이었던 고 서광선 교수가 2013년 4월 YMCA 새로운 100년을 계획하는 사업협의회 공동대표로서 37년 만에 개정하게 된 목적문의 초안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안재웅 전국연맹 이사장, 서 교수,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남부원 전국연맹 사무총장. 한국YMCA전국연맹 제공

한국전쟁 초기 1950년 초가을 어느날, 북한 공산당원에 의해 서 교수의 부친 서용문 목사가 무참히 살해당했다. 큰 아픔과 적개심을 품고 자랐던 아들이었지만, 서 교수는 반공의식으로 무장한 극우파 신학자가 되지 않고, 용서와 화해와 남북교류를 강조한 민중신학자로서 남은 일생의 길을 올곧게 걸었다. 서 교수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이화여대 교수자리에서 강제 해직당하기 전, 1970년대 중반기에 태동된 한국민중신학 운동의 선구자였다. 민중신학회 동지였던 서남동 교수가 광주 5·18 국립묘지로 이장된 이후, 노구를 무릅쓰고 한해도 거르지 않고 7월 여름 혹서에도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후학들에게 무덤가 잔디에서 오순도순 느린 차분한 목소리로 ‘진실’ 을 말씀하던 그분의 성실성을 잊을 수 없다.

나이로는 훨씬 아래인 필자를 친구처럼 대해 주시며 격려 겸 나무람도 하셨는데, “왜 장공 김재준 목사가 힘써 출판하시던 월간잡지 <제 3 일> 을 속간하지 않느냐? 기장교단과 한신대 장공의 제자들이 다 죽고 없느냐?” 라고 힐문하셨다. <제 3 일>은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 와 함께, 군부 독재정치가 이 땅의 언론을 목졸라 죽일 때, 민중들의 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1970년 4월 창간된 월간지이다.

지난 2011년 8월 혜암 이장식(앞줄 맨 가운데) 한신대 명예교수의 ‘세계 교회사 이야기’ 출판기념회 때 고 서광선(앞줄 오른쪽 넷째) 교수와 필자인 김경재(앞줄 맨 왼쪽) 교수 등이 함께했다. 베리타스 프레스 제공
지난 2011년 8월 혜암 이장식(앞줄 맨 가운데) 한신대 명예교수의 ‘세계 교회사 이야기’ 출판기념회 때 고 서광선(앞줄 오른쪽 넷째) 교수와 필자인 김경재(앞줄 맨 왼쪽) 교수 등이 함께했다. 베리타스 프레스 제공

신학자로서 서 교수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친 두 사람만 든다면 미국 예일대 교수로서 ‘책임적 자아’를 강조했던 리챠드 니버와 장공 선생일 것이다. 한국 기독교 진보신앙의 대부인 장공은 말했다. “예수는 이 역사 속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의 뿌리를 심어 넓고 깊게 뻗게하는 정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장기적이고 종합적이며 본질적인 경륜과 배포에서 하나님 나라 정치를 추진하신다.” 그리고 그 정치의 궁극 목적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형성이요, 그 전략과 구체적 실천 목표는 “생명·평화· 정의” 라고 갈파했다. 목사로서 서 교수는 장공의 뒤를 잇는다. 그래서 그의 신앙의 가슴은 아버지의 신앙유산 영향으로 보수적이지만, 신앙의 머리는 장공을 닮아 매우 진보적이었다.

서 교수는 그가 30년 세월동안 교목으로서 봉직한 이화여대의 새로 지은 채플실에서 행했던 마지막 사순절 초청자 설교에서 기독교복음의 본질을 이렇게 설파했다. “예수님이 마지막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 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참사랑에는 정의가 따라야 한다.”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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