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의정부시 가능동 첫번째 두레방 앞에서 고 문혜림(오른쪽) 선생과 함께한 유복님 원장. 필자 제공
지나온 삶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숙*, 인*, 정*, 써니, 지니…, 알려지고 싶지 않은 이름을 가졌던 언니들, 그리고 ‘우리의 두레방 엄마’ 문혜림 선생님. 지난 11일 멀리 미국에서 그렇게도 사랑하신 남편 문동환 목사님 곁으로 떠나신 ‘엄마’를 생각하며 빛나고 치열했던 그 나날들 안으로 다시 들어가 봅니다.
그 시절 우리는 초라했지만 빛났고, 치열했지만 기쁨과 여유를 잃진 않았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특수선교센터 ‘두레방’은 몇달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6년 봄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의 주한미군 2사단 사령부 캠프 레드클라우즈 앞에서 첫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단체가 전무한 시절이어서 뭔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은 늘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조그만 부엌이 딸린 방 한칸의 600만원 전세방을 우리는 참 살뜰하게도 활용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 선생님의 전문상담 사무소로, 영어교실, 한국어교실, 요리교실, 연극, 책거리잔치, 공동식사 등이 이어졌고, 여행, 가정방문, 기지촌 현장방문, 성병진료소 방문 등등 쉴틈이 없었지요.
밤이 되면 그 방은 상근 활동가인 저의 숙소가 되었고, 혼자 있는 제가 심심할까봐 언니들은 자주 놀러왔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습니다. 언니들의 첫 사회생활은 대부분 기지촌이 아닌 공장에서, 어린 나이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가난, 공교육 부족으로 인한 무시, 저임금, 성폭행, 선불금 등의 여러 이유로 언니들은 밀리고 밀려 기지촌으로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밤새 울며 웃으며 나눈 이야기를 이튿날 아침이면 문 선생님께 전달해 전문상담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문 선생님은 우리들 마음 속의 엄마로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언니들 편들기’를 했습니다. 오래 전 언니들의 자치모임인 ‘민들레회’가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고립된 섬같았던 기지촌에서 두레방은 언니들의 유일한 놀이터가 됐습니다. 그래서 문 선생님과 저는 대학이나 교회 또는 외국의 강연 요청이 있을 때마다 언니들의 편에 확실히 서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1987년 봄 의정부에서 두번째로 문을 연 송산 두레방 앞에서 책거리 잔치를 마친 귀 함께한 고 문혜림(왼쪽) 선생님 유복임 원장. 필자 제공
두레방은 점차 성장해갔고 국내외 단체들의 시선과 기대도 모으며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두레방을 넓히자는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문 선생님과 저는 하나를 키우지 않는 대신, 작은 두레방을 다른 기지촌에서 또 시작했습니다. 캠프 레드클라우즈 근처에는 주한 미군과 국제결혼을 했거나 동거중인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면, 송산의 캠프 스탠리 지역에는 미군전용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송산 지역을 마음에 두고 자주 다니며 언니들이 만만하게 들어올 수 있는 문턱 낮은 두레방이고자 했습니다.
송산 두레방에서는 ‘두레방빵’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기지촌 여성들은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상품으로서의 성의 가치가 빨리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성들의 다시서기 프로그램이 필요했습니다. 요리솜씨 좋은 문 선생님의 지도로 4명의 언니들이 함께 빵을 만들면 이화여대, 연세대 등 대학과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 그리고 교회에서 주문을 해주었습니다. 수익은 내지 못했지만 그 의미와 상징성은 상당했습니다.
우리는 은퇴한 언니들을 현장 출신 활동가라 이름짓고, 강연 함께 가기, 연극 관람과 공연하기, 송산지역 여성들 함께 방문하기 등을 함께 했습니다. 초등학교만 다녔거나 직장 경험이 전혀 없는 언니들에게 공식 원장이자 상근 활동가인 저와 똑같이 급여를 지급했습니다. 그 결정은 지금 생각해도 자랑스럽습니다.
‘기활’(기지촌 체험 활동)도 두레방에서 시작했습니다. 연세대 총여학생회를 시작으로 이화여대, 서강대, 상명대, 성균관대 등에서 기지촌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불러주었습니다. 대학들에게 농활(농촌 체험), 공활(공장 체험)은 있는데 왜 기활은 없느냐는 질문을 계속 던졌고, 마침내 학생들이 응답해주었습니다. 신청하는 학생들이 많아 6:1의 경쟁을 뚫고 기활을 온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훌륭한 자세를 가진 자원활동가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덕분에 세번째 두레방을 열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시 보산동 캠프케이시 옆 골목에 자리한 두레방은 학생운동 출신 자원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빠르게 정착했습니다.
지난 2019년 여름 미국으로 떠나시는 문 선생님을 모시고 송별 예배를 드린 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많이 여위고 쇠약해진 선생님은 우리를 잘 못 알아보셨지만 해맑은 아기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대 끝자락에서 선생님을 만나 30대 중반까지, 제 삶의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시절을 선물해주신 문 선생님, 고맙고 그립습니다.
영미와 영혜, 그리고 창근과 태근의 엄마이셨고 저와 언니들의 엄마이셨던 문혜림 선생님, 부디 편히 가세요
유복임/두레방 초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