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초대전 <더 랜드> 전시장에서 ‘봉화도-1’(1988)를 배경으로 자리한 고 강광 화백. 가나아트 제공
‘민중미술 1세대’로 불리는 강광 화백이 5일 오전 3시께 별세했다. 향년 82.
1940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해방 이후 월남해 서울에서 자랐지만 실향민의 정서와 자연을 소재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입대해 1년 반 동안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제대 이후 제주 오현중·고교 미술 교사로 재직한 그는 고영훈·강요배·강승일 등 제주지역 작가들을 화단으로 이끌었다. 1977년 제주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관점동인’(觀點同人)을 결성해 활동했다. 그 인연으로 후배 작가들의 초청을 받아 2018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강광, 나는 고향으로 간다>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자연을 단순히 재현할 수 있는 추상적 재료가 아니라 스스로 감정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여겼다. 하지만 리얼리즘을 표방한 당대 민중미술 주류의 직설적 묘사 대신, 구상과 추상을 오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개척했다. <푸른 의자 위의 여인>(1976)· <밤-사잇길>(1981) <상황-오름>(1983) <오월의 노래-잃어버린 꿈>(1985) 등이 대표작이다.
현대사에 드러난 살육과 은폐로 얼룩진 제주와 전남 광주의 질곡의 역사 등 시대의 아픔을 담은 작품들로인해 그는 1980년대 신군부에 의해김경인, 임옥상, 신경호, 홍성담 등과 함께 ‘불온 작가’로 낙인찍혀 작품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그는 생전에 “예술가는 한 시대를 고발하고 정화하는 예언자다. 이는 예술가의 사회참여와 구분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을 밝혔다.
1982년 인천대 미술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제주를 떠난 그는 인천대 부총장과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냈고 지역의 사회운동에도 앞장섰다. 인천대 시립화운동을 계기로 인천의제21 문화분과위원장, 인천민예총 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통일운동에도 참여해 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인천 대표를 맡았다. 말년에는 강화 마니산 인근에 정착했다.
유족으로 부인 박정혜(시인)씨와 딸 강은주(미국 뉴욕주립대 교수)·은수(미국 카네기멜른대 교수)씨, 사위 진은준(서울교육대 교수) 바나바스 포초스(미국 카네기멜른대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인천의료원, 발인은 8일 오전 6시30분이다. (032)580-6673.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