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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강수연’은 없지만 그만의 ‘명연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등록 2022-05-30 20:53수정 2022-06-01 18:21

[기억합니다] 한 배우를 사랑했던 평론가의 글
2010년 4월 ‘제11회 전주영화제’ 개막행사 때 임권택 감독과 함께 레드카펫을 걸고 있는 고 강수연 배우. 연합뉴스
2010년 4월 ‘제11회 전주영화제’ 개막행사 때 임권택 감독과 함께 레드카펫을 걸고 있는 고 강수연 배우. 연합뉴스
“한국 영화가 1980년대 암흑기를 거쳐 2000년대 세계 영화계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고인이 발판 구실을 했다. 국내 언론은 잇단 영화제 수상 이후 고인의 이름 앞에 국내 배우 최초로 ‘월드 스타’라는 수식을 붙이기 시작했다.”

지난 7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강수연을 두고 언론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지금까지 펴낸 12권의 영화평론집을 새삼 펼쳐 보았다. ‘강수연 출연작’을 보고 그의 연기에 대해 썼던 글들을 찾아보며 고인을 영원히 기리고 싶어서였다.

1992년 발간한 첫 영화평론집 <우리영화 좀 봅시다>를 비롯해 <한국영화 씹어먹기>(1995) <한국영화 산책>(1996) <한국영화를 위함>(1999) 등을 펼쳐보니, 고인의 전성기 시절인 1990년대에 쓴 글들이 역시 많았다. 2004년 펴낸 방송평론집 <텔레비전 째려보기>에도 강수연에 대한 글이 있었다. 2001년 1월 중순 전국의 일간지 연예면을 장식한 강수연 인터뷰 기사를 보고 쓴 것이었다. 영화 만을 고집해오던 그가 16년 만에 티브이 출연해 화제였는데 바로 사극 <여인천하>(SBS)였다.

1985년 내가 영화평을 쓰기 시작한 이래, 한 배우의 출연작 7편을 보고 그때마다 글을 쓴 것은 유일했다. 유독 그에 대한 글이 많아 스스로도 놀랐다. 그만큼 강수연이 왕성한 배우 활동을 했다는 증표였다.

19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강수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씨받이’의 극장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강수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씨받이’의 극장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평론들 가운데 몇 문장을 옮겨본다. ‘배우 강수연은 어느 작품에서나 발광하듯 돋보인다. 1987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씨받이>에서 ‘옥녀’는 배역에 철저히 맞아 떨어져 영화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왕서방 앞에서 처음 옷을 벗을 때 흘리는 <감자>의 표정 연기는보다 ‘씨받이’에서보다 윗길로 보인다.’ ‘한편 강수연의 출연료는 12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개봉된 <베를린 리포트>에서도 1억 원을 현찰로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 값을 해냈는지 따져 보자. 내가 기억하기로 강수연의 연기가 일품인 영화는 손창민과 공연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이다.’ ‘<장미의 나날>에서 실망스러운 것은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인 재희(강수연)의 섹스신이 미스터리와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은 채 각각 놀고 있는 점이다. …그가 출연한 어떤 영화보다도 잦은 섹스신에서 강수연의 표정·자세·분위기 등은 압권이었다.’ ‘<블랙잭>에서, 우선 강수연(장은영 역)의 섬세한 심리연기를 특기할만하다. 도입부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인 끝에 오세근(최민수)과 키스하는 사실감을 보이더니 “날 안믿는 거죠” 할 때나 “왜 전화한 게 잘못이예요?” 물을 때의 백치미어린 표정 연기가 그것이다. 에로틱 스릴러가 아니라면 선뜻 이해하기 힘든 장은영의 그런 천사와 악마의 이중적 모습을 강수연이 과연 월드 스타답게 섬세한 심리연기로 커버해낸 것이다. 그런 모습은 결말의 “당신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날 믿지 말아요”에서 절정을 이룬다.’

2022년 5월 7·8일 고 강수연 배우의 빈소를 지킨 임권택 감독. 연합뉴스
2022년 5월 7·8일 고 강수연 배우의 빈소를 지킨 임권택 감독. 연합뉴스
지난 5월 7~8일 이틀 연속 고인의 빈소를 찾은 임권택 감독은 “좋은 연기자를 만난 행운 덕분에 내 영화가 좀 더 빛날 수 있었다. 여러모로 감사한 배우”라며 말을 잇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맞는 말이지 싶다.

임 감독은 강수연에게 <씨받이>(1987)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각각 베니스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해 준 거장이다. 그로부터 20년도 넘게 지난 2011년 강수연은 임 감독의 102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에 출연하는 의리를 보였다.

한편 영화 속 명대사로 회자되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자그마치 1341만여명이 극장을 찾은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한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은 강수연이 술자리에서 처음 했고, 류승완 감독이 대사로 집어넣었단다.

“우리에게 강수연은 없지만, 그가 남긴 명연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부디 영면하시길!

전주/장세진 문화평론가

원고료를 드립니다-<한겨레>가 어언 35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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