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우철(왼쪽 셋째) 강원대 명예교수가 2013년 유기억(왼쪽 둘째) 교수를 비롯한 제자들과 함께한 모습이다. 유기억 교수 제공
‘ 제비꽃 찾으러 산으로 갈까요 . 할미꽃 찾으러 바다로 갈까요 . 야책(채집 바구니)에 가득히 넣어가지고서 랄랄랄랄 즐겁게 온다네 !’
고 이우철 교수님과 40여년 함께 하면서 배운 유일한 노래 ‘ 제비꽃 ’ 의 가사입니다 . 교수님은 음치이셨지만 당신께서 작사 · 작곡한 곡이니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노래를 잘 한다 해도 그 느낌을 따라갈 수가 없었지요 . 이젠 그 노래가 마음 속에서만 고요히 울려 퍼집니다 . 이렇게 갑자기 교수님을 보내드리고 나니 함께했던 오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
교수님은 1968 년 12 월 13 일 창립한 한국식물분류학회 초대 회원이자 1989~90 년 학회장으로서 최근까지도 학회 발전을 위해 무던히 애를 쓰셨습니다. 1975 년 부임하신 이래 26 년 동안 교육과 연구의 나래를 펼쳤던 강원대에서는 자연과학대학장과 자연사박물관장을 지내며 대학 발전에 기여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바탕으로 후학들을 키우는 여정이었습니다. 또한 평생의 숙원이었던 ‘ 죽파식물분류학상 ’ 제정은 교수님의 식물분류학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가장 큰 업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항상 인자하고 따뜻하셨던 , 그리고 그 누구보다 식물에 대한 열정이 넘치셨던 교수님 . 주말과 공휴일도 없이 항상 오전 8 시 30 분이면 연구실 문을 열고 저녁 7 시까지 꼬박 정진을 하셨습니다 .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으신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 둘 세상으로 나오는 저서들을 보면서 그 노고의 시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식물분류학을 좀 더 쉽게 익힐 수 있도록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다양한 정보가 가득한 ‘바이블’같은 책들이었습니다 . 연구년에도 교수님은 사모님과 함께 일본에 가서 식민지 시절 수집해간 우리나라 식물 정보를 조사하고 확인하는 작업으로 쉴 틈이 없었습니다 . 그렇게 10여년 준비해 1995 년과 96 년 잇따라 펴낸 <원색한국기준식물도감>과 <한국식물명고> 는 한국의 모든 식물을 집대성한 최고의 걸작이라 생각합니다 . 정년 퇴임 이후에도 교수님은 식물 관련 외서를 100 권이나 번역하셨습니다 . 친히 제본한 책을 들고 학교에 오셔서 꼭 읽어보라고 당부하시곤 했습니다 . 특히 국문과 교수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해 집필한 <한국식물명의 유래>나 한국식물분류연구의 역사를 한 눈에 정리한 <한국식물의 고향>과 같은 책들은 식물학 전공자라면 항상 곁에 놓고 보아야 할 기본도서라고 확신합니다 . 이 모든 것이 교수님의 열정과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옥고입니다 .
교수님은 제자들을 위한 교육방식도 남다르셨습니다 . 특히 보다 정확한 지식 전달을 위해 호랑이같이 엄하고 냉철한 스승이셨습니다 . 하지만 야외조사처럼 힘들고 함께 땀 흘리며 부대끼는 시간에는 아버지처럼 친근한 분이셨습니다 . 이런 교수님의 냉철하지만 따뜻한 모습들이 지금의 후학들을 있게 한 밑거름이 아닐런지요 .
60여년 해로한 사모님은 교수님을 두고 ‘ 참 열심히 사신 분 ’ 이라 말씀하셨습니다 . 저는 물론이고 교수님을 아는 많은 이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교수님이 남기신 수많은 발자취와 그 향기는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 교수님께서도 그 곳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보시길 소원합니다 . 어쩌면 푸나무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고 계실 교수님이 벌써부터 그리워집니다 . 어린 아이처럼 환히 웃으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가만히 ‘ 제비꽃 ’ 노래를 흥얼거려 봅니다 .
유기억/강원대 교수· 한국식물분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