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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늘 미술사 현장에서 열정 쏟던 당신이 참 좋았습니다”

등록 2023-01-03 18:48수정 2023-01-05 00:27

[가신이의 발자취] 재일 미술사학자 고 박형국 선생을 보내며
지난해 11월22일 도쿄 다치카와에서 찍은 고 박형국(아래 왼쪽) 무사시노미술대 교수의 마지막 사진. 동료인 쿠로카와(아래 오른쪽) 교수와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 임석규(뒷쪽) 학예연구실장이 함께했다. 임석규씨 제공
지난해 11월22일 도쿄 다치카와에서 찍은 고 박형국(아래 왼쪽) 무사시노미술대 교수의 마지막 사진. 동료인 쿠로카와(아래 오른쪽) 교수와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 임석규(뒷쪽) 학예연구실장이 함께했다. 임석규씨 제공
“혼자 등산하고 내려와서 한잔하고 있습니다. 오늘같이 자유로운 시간도 있습니다. 박형국.” 지난 12월16일 오후에 받은 이메일입니다. 그로부터 11일이 지난 날, 일본 도쿄로부터 비보를 들어야 했습니다. 향년 57. 그리 급작스럽게 떠나다니요.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지만, 너무도 황망, 황망합니다.

언제까지고 넋 놓고 지낼 수는 없는 일. 우리가 이생에서 잡은 손을 놓기 전에 서둘러 짧게나마 답 인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서울에, 모국에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없는 솜씨지만 글로 옮깁니다. 감히 모두를 대신하여, 떠나는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을 2007년 서울에서 처음 만났지요. 어느덧 15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 커서 장년에 만났지만 우리는 죽이 잘 맞았지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2009년 일본과 한국,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권진규전’도 열었고, 10년 뒤인 2019년에는 도쿄에서 국제콘퍼런스 ‘부르델이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에도 다시 힘을 모았습니다.

당신은 참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사학과를 나온 뒤 일본에 건너가 조형학을 공부한 당신은 2002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명문 사학인 무사시노미술대학의 교원이 되었지요. 그뒤 오랫동안 조형문화 ‧ 미학미술사 전공 주임교수로서 당신은 한국 유학생들에게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 주었습니다.

연구자로서도 특출했지요. 당신은 동아시아 종교미술학계의 앞날을 비춰주는 등대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특히 불교미술 연구 분야에서는 탁월한 업적을 쌓은 세계적 권위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늘 당신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지요. 모국을 방문할 때면 촉박한 일정에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을 꼭 들렀습니다. 지역의 국립박물관과 공공미술관 전시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대구 본가에는 못 갈지언정 동료 ‧ 후배 연구자와 큐레이터들에게는 기꺼이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줬습니다.

만날 때마다 당신이 힘껏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었지요. 시기로는 고대와 근대를 통틀었고 분야로는 불교미술에서 근대 조각과 회화까지 아울렀습니다. 어디 그뿐이었나요. 그 진실한 탐구 정신과 자세는 당신이 떠났어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 살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연구에서나 조사에서나 허투루 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펴낼 때는 교열자와 함께 밤새워 교정을 보았습니다. 작품을 조사할 때는 표면에 난 작가의 지문 하나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혼신의 열정을 쏟는 연구자였고 멘토였습니다.

당신은 교단 위에만, 책상머리에만 있지 않았지요. 늘 현장 어디엔가에 가 있었습니다. 답사 때면 매의 눈이었고 복원에는 장인의 손이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앙코르와트사원 복원사업에 참여할 때 얻은 풍토병은 평생의 지병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때 얻은 경험을 한국 문화재청이 추진해 온 라오스의 세계문화유산인 홍낭시다사원의 보존·복원사업 연구진과 함께하면서 크게 보람을 느끼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국경 없는 문화 복원자, 동아시아 지역을 잇는 문화의 가교였습니다.

당신은 소탈했습니다. 가로로 난 까만 줄무늬 셔츠는 몇 해째 즐겨 입었습니다. 술잔을 기울일 때면 벗들을 흥겹게 해주는 주백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아첨하지도 모나게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스스로 단단하면서도 넉넉했습니다. 그런 당신이 나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더는 이생에서 볼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다 하루가 아니라 매일같이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싶었나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빨리 가다니요, 야속한 사람. 어쩌겠어요. 고이 보내 드리지요. 가면 기별하리다. 또 만나요, 우리. 다시 손 마주 잡고 웃어요, 우리.

허경회/권진규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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