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궂긴소식

“동굴탐사·환경운동·민주화운동…뭐든 끝까지 ‘미친 사람’이었죠”

등록 2023-02-20 21:06수정 2023-02-21 10:53

[가신이의 발자취] 고 석동일 형을 기억하며
지난 2017년 6월항쟁 30돌 기념 다큐멘터리에서 고 석동일씨가 ‘광주학살’ 사진과 비디오 제작 비화를 증언하고 있다. 유족 제공
지난 2017년 6월항쟁 30돌 기념 다큐멘터리에서 고 석동일씨가 ‘광주학살’ 사진과 비디오 제작 비화를 증언하고 있다. 유족 제공
전국고교 등반대회 3연패한 산악인
수백개 대표 동굴 기록한 사진가
동굴 훼손 폭로해 ‘동강댐 백지화’
‘광주학살’ 사진 집에서 몰래 ‘인화’
1986년 명동성당 첫 전시 ‘큰 반향’

“춘이 너 시방 뭣허고 있냐” 유언으로

지난 14일 작고한 석동일형은 여러 모습을 가진 인물이다. 사람에 따라 동굴사진 작가, 또는 광고사진 작가, 어떤 이는 환경운동가, 민주화 유공자, 최근에는 유기견 보호자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를 ‘미친 사람’으로 기억한다.

고인은 광주상고 시절 산악반에서 활동했다. 그와 함께한 후배들은 전국고교 등반대회에서 3년 내리 우승한 산악인으로 형을 기억한다. 정말로 후배들과 함께 미친 듯이 연습했다고 한다. 이때 기록을 위해 배우기 시작한 사진에 빠져 카메라와 씨름하다 마침내 전업사진작가로 나섰다.

그는 광고사진을 찍는 틈틈이 등반기술과 사진을 접목하여 동굴탐사에 나섰다. 동굴탐사는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암흑 속에서 절벽과 물길을 헤쳐야 하는 고난도 등반이기도 하다. 동굴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장시간 움직이며 인공조명으로 촬영해야 하는 만큼 많은 장비를 운반해야 하는 중노동이기도 하다. 나도 고인의 동굴탐사에 한번 따라 가 본 적이 있었는데, 아차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등반이었다. 그만큼 준비와 훈련이 필요하고, 시간과 비용이 지출되었다. 한번 꽃히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격답게 그는 전국의 수백개 주요 동굴을 탐사하여 <한국의 동굴>, <동굴의 신비> 등 여러권의 자료집을 냈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다는 사명감에서 해냈다. 그 이후 그보다 더 자세하게 정리한 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점점 탐사 범위를 넓혀 1980년대 초반 버섯에 대한 사진자료집을 내기도 했다.

고 석동일씨가 1988년 삼척 관음굴 안에 있는  15m 높이의 수직 폭포를 사다리를  타고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로 꼽히는 관음굴은 비공개 동굴이다. 함께 탐사했던 필자 기춘씨가 찍었다.
고 석동일씨가 1988년 삼척 관음굴 안에 있는 15m 높이의 수직 폭포를 사다리를 타고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로 꼽히는 관음굴은 비공개 동굴이다. 함께 탐사했던 필자 기춘씨가 찍었다.
고 석동일씨가 삼척 관음굴의 수직폭포를 오르는 이 사진은 한때 방수 원단 브랜드 ‘고어텍스’의 광고에 쓰일 정도로 유명했다. 기춘씨 제공
고 석동일씨가 삼척 관음굴의 수직폭포를 오르는 이 사진은 한때 방수 원단 브랜드 ‘고어텍스’의 광고에 쓰일 정도로 유명했다. 기춘씨 제공
고 석동일씨가 1988년 삼척 관음굴의 15m 수직 폭포를 오르면 나오는 수로에서 보트를 타고 탐사를 하고 있다. 동생 석동율씨 제공
고 석동일씨가 1988년 삼척 관음굴의 15m 수직 폭포를 오르면 나오는 수로에서 보트를 타고 탐사를 하고 있다. 동생 석동율씨 제공
그즈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간사로 일하던 내가 처음으로 고인에게 부탁한 일이 ‘광주학살 사진 인화’ 작업이었다. 광주에서 사진들은 어렵게 구했지만 아주 작고 필름도 없었다. 그것을 크게 뽑아줄 사진관이나 현상소는 전국 어디에도 없었다. 광주를 짓밟고 집권한 전두환 철권통치가 모두의 몸을 사리게 만들 때였다. ‘명동성당 신자’라는 인연 뿐이었지만, 형은 “이런 거 하라고 사진을 배웠는갑다”라며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렇지만 동일형 역시 맡길 데가 없으니, 은평구 대조동 자신의 집에서 목욕탕 창과 문을 검은 테이프로 가려 암실로 만들고 욕조에 현상액과 인화액을 풀어 사진을 뽑아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전국에 나돌던 대형 광주학살 사진은 모두 고인이 만들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86년 5월 명동성당 마당에서 ‘광주’ 사진 전시를 열 수 있었다. 일부 대학 교내 말고는 사실상 첫 ‘광주의 진상’ 공개여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성당 문화관에서는 비디오 상영도 했는데, 오래된 건물이라 무너질까봐 인원 제한을 했을 정도였다. 그때 주문이 쇄도해 몇 달 동안 고인의 집에서 함께 ‘광주 비디오’도 1만여개를 복사했다. 동일형에게 미안했지만, 형은 물론 형수도 싫은 소리 한번 안했다.

그때부터 전국의 성당을 중심으로 퍼진 광주 자료집과 비디오의 총판매 대금이 1억5천만원쯤이나 됐다. 물론 모두 민주화운동에 썼고 일부 남은 대금은 1988년 정의구현사제단에 기부했다.

동일형은 애초 인화비를 물었을 때 쓸데없다고 면박을 줬고, 나 역시 ‘광주의 피묻은 돈’은 일원도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안기부에서 뼈도 남지 않게 부서졌을 것이다. 1987년 지역 순회 사진전을 맡았던 후배가 불심검문에 걸려 회계장부를 뺏긴 일이 있었는데, 1992년 남산 안기부 지하실로 끌려가보니 그 장부가 있었다. 그 시절 공안세력들이 피의자 상대로 돈이나 여자 문제로 ‘부도덕한 놈’ 만드는 고수였지만, 꼬투리 잡을 게 없다고 했다.

맏형 고 석동일씨의 영향으로 모두 사진가로 활동한 3형제가 지난 1981년 영월 용담굴 탐사를 함께한 모습이다. 왼쪽부터 석동일·동율(전 <동아일보> 사진기자)·동인(전 <평화신문> 사진기자)씨. 석동율씨 제공
맏형 고 석동일씨의 영향으로 모두 사진가로 활동한 3형제가 지난 1981년 영월 용담굴 탐사를 함께한 모습이다. 왼쪽부터 석동일·동율(전 <동아일보> 사진기자)·동인(전 <평화신문> 사진기자)씨. 석동율씨 제공
앞서 1989년 ‘서경원 무단 방북 사건’으로 내가 수배됐을 때도, 안기부·보안사·경찰까지 동일형네 앞·뒷집에 방을 잡고, 도청장치를 심어 하루 종일 안방까지 감시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형은 고생한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너 때문이냐?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때문이지.”

고인은 평생토록 앵글에 비친 자연과 사람에게 미친 듯이 애정을 보였다. 동굴의 아름다움에 반한 그는 동굴보존운동에 나서 여러 제도를 이끌어냈다. 1990년대 말 동강댐 예정지인 평창의 백룡동굴 내 남근석(종유석) 절단을 폭로한 것을 계기로 ‘영월댐 반대운동’에 나섰고, 1999년 3월에는 댐 건설 보상금을 기대한 수몰 예정지 주민들에게 위협을 당해 2시간 넘도록 승용차 안에 갇혀 있다 풀려난 적도 있었다. 동강댐 백지화에 공헌한 공로로 환경기자클럽 제정 ‘98 올해의 환경인상’과 교보생명 제정 ‘제1회 교보환경문화상’을 받았다. 아름다운 동강이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데는 그의 공이 크다 할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미친 듯이 매달렸다. 그렇게 해서 가족에게는 큰 도움이 안되었지만, 기록 자료와 자연환경 등 우리 모두에게는 소중한 유산을 남겼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처럼 미친 사람이 더 많이 있어야 한다.

“독재하던 놈들 내보냈더니, 검들이 설치는 세상이 되어 부렀다. 춘이 너 시방 뭣허고 있냐?” 그 말이 형의 유언이 되었다. 이제 여기 일은 여기에 맡기고, 형은 하늘에서 편히 쉬소서.

기춘/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간사·재외동포재단 이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헌재 직권증인 “이진우, 공포탄 준비 지시…의원 끌어내라고” 1.

[단독] 헌재 직권증인 “이진우, 공포탄 준비 지시…의원 끌어내라고”

방첩사 정성우 “노상원 전화 ‘모두 위법’…대화 안 돼 언성 높였다” 2.

방첩사 정성우 “노상원 전화 ‘모두 위법’…대화 안 돼 언성 높였다”

김용현 변호인, ‘증거인멸’ 말 맞췄나…이진우·여인형 ‘옥중 접견’ 3.

김용현 변호인, ‘증거인멸’ 말 맞췄나…이진우·여인형 ‘옥중 접견’

법원 폭동으로 경찰 뇌진탕, 자동차에 발 깔려 골절…56명 부상 4.

법원 폭동으로 경찰 뇌진탕, 자동차에 발 깔려 골절…56명 부상

2년 연속 국민연금 가입자 10만명씩 감소…연금개혁은 요원 5.

2년 연속 국민연금 가입자 10만명씩 감소…연금개혁은 요원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