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8월 동아일보를 방문한 샤오화저 중국 인민일보 사장으로부터 중국 유명 서예작품집을 기념품으로 받은 고 김병관 전 회장. 동아일보 제공
34살 입사…영업부서 돌며 ‘경영 수업’
국제교류·교육·문화 지원 등 두루 활동
‘탈세’ 불명예 퇴진·‘튀는 행동’ 구설도
국제교류·교육·문화 지원 등 두루 활동
‘탈세’ 불명예 퇴진·‘튀는 행동’ 구설도
25일 세상을 떠난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은 동아일보사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장손이자 일민 김상만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장남인 3세 경영인이다. 김 전 회장은 1934년 7월24일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34살이던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그는 기자직이 아닌 판매·광고 등 업무직에서 신문사 경영수업을 받았다. 관리과장을 시작으로, 판매와 광고부서를 두루 거쳐 1977년 판매 및 광고국장, 81년 상무이사, 83년 전무이사, 85년 부사장, 89년 사장, 93년 회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부사장이던 1987년부터는 발행인으로 동아일보를 이끌었다. 87년에는 동아일보가 특종보도한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이 6월 항쟁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이를 두고 동아일보쪽은 “고인은 당시 군사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성역 없이 보도하도록 기자들을 격려하는 등 동아일보가 언론자유를 쟁취하고 수호하는 데 늘 앞장섰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평가도 있다.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이 동아일보 ‘수장’에 오른 뒤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 체제에 비판적인 ‘야당지’ 이미지가 실종되고 보수적인 색채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한다. 경영 면에서는 신문사 경영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부터 서울 충정로 사옥과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를 짓고, 오금동 공장과 대구 공장, 안산 공장을 세워 초고속 윤전시설로 93년 조간신문 전환의 인프라를 마련했다. 김 전 회장은 95년 중국 리펑 총리와 단독 회견을 가졌고, 98년에는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의 초청으로 남쪽 언론경영인으로는 처음 북한을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95년부터 동아일보와 중국의 인민일보,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 3사간 국제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앞장섰다. ‘튀는 행동’으로 입길에 오르내린 적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 10월 ‘고대앞 사건’. 김 전 회장은 당시 고려대생들에게 강의를 거부당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학생들과 정문 앞에서 무려 14시간 동안 대치할 때, 술을 마시고 나타나 “(시위 학생들은) 주사파 애들이다”라는 등의 말을 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교육계와 문화계에도 이름을 올렸다. 99년 고려대 재단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과 2005년 한국디지털교육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90년에는 창극 아리랑의 러시아 순회 공연을 지원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91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는 이한동 전 국무총리 및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사돈 관계이다. 동아일보 경영은 대표이사 부사장인 장남 재호한테 2002년부터 맡긴 상태여서 신문사 경영에 변화요인은 적은 편이다. 동아일보쪽은 ‘화정 김병관 선생 장례위원회’(위원장 권오기)를 구성해 28일 오전 9시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빈소 고려대 안암병원 (02)921-2899, 3099.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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