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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민주화 꿈을 먹고 살던 사나이

등록 2013-12-22 19:11수정 2013-12-22 20:49

고 나병식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고 나병식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가신이의 발자취]
나병식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밤새워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두고 열띤 담론을 벌이면서도 거뜬하게 버티던 그 강골이 왜 이렇게 일찍 죽었는가? 우리 사회가 그를 버렸다고 말해야 옳은가? 이런 소박한 화두를 던지고 보니 가슴이 더욱 서늘해진다.

나병식(사진) 의사의 고난은 이른바 유신시절로 돌아간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재학생 시기,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유신반대 투쟁의 대열에 나섰다. 마침내 유신정권은 1974년 전국의 학생 180명을 구속하고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나병식은 반유신 주범의 혐의로 긴급조치 위반죄가 적용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구속된 지 10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나기는 했으나 심한 고문을 받고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상황 속에서 심신이 망가졌다. 하지만 그의 기개는 결코 죽지 않았다. 그는 더욱 민주화투쟁의 대열에 앞장섰다.

그는 두어 가지 목적으로 풀빛출판사를 차렸다. 의미 있는 인문서적을 내겠다는 의지와 생계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풀빛출판사에서 <한국민중사>를 펴낸 그는 이번에는 신군부에 의해 구속됐다. 그는 법정에서 발행인인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필자들을 보호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이런 저린 일로 네차례나 감옥을 넘나들었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그는 두 가지 일을 벌였다. 하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는 데 앞장서서 끝내 이루어냈고 상임이사를 맡아 고통 받던 민주인사의 권익보호와 민주화운동의 조사와 정리를 해냈다. 그에게는 평생에 걸쳐 이 직책이 유일하게 공적 월급을 받는 자리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출판운동을 벌이면서 그 책임자 자리를 맡아 건전한 서적을 보급하고 인문학의 정리와 발굴에 나섰다. 출판사 이름 ‘풀빛’과 자녀들의 이름 ‘힘찬’ ‘빛나’ ‘’슬기에서도 그의 혼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겠다.

하나의 보기를 더 들어보자. 2010년은 한일병합 100년, 한국전쟁 발발 60돌, 4·19혁명 50돌, 광주민중항쟁 30돌이 되는 역사적인 해였다. 이를 앞두고 우리 탐방단 20여 명은 압록강·두만강·백두산 탐방단을 꾸려 민족의 혼과 국경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길에 나섰다. 그가 탐방단장을 맡아 아픈 역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젊은 날 역사학자의 꿈을 현장을 통해 확인하려는 의지였을 것이다. 우리 탐방단은 그와 함께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고 때로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의 성품은 한 마디로 말해 소신과 의지로 차 있었고 늘 남을 돕는 일을 벌였다. 인정이 넘쳐나고 마음이 여리면서도 강한 리더십이 있었다. 하지만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다. 꿈을 먹고 살던 사나이였다.

오늘날 민주 질서는 유린되어 혼란에 빠져들고 있고 지역과 계층 사이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는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버티다가 세상을 달리하고 말았다. 아, 절통하구나. 그래도 그는 우리 땅에서 굳은 신념을 지닌 민주의사로 역사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지하에서라도 머지 않아 우리 사회의 민주질서가 바로 서는 날을 지켜 볼 것이다.

모든 걸 산 자에 맡기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마음 편히 가시오. 우리도 뒤따라가서 못다 한 얘기 나눌 것이니….

이이화/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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