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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진보운동 외로운 길 천천히 가자 할걸…”

등록 2014-03-11 18:50수정 2014-03-11 22:20

가신이의 발자취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를 보내며
박은지 동지는 2008년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 후보였던 저를 위해 선거운동을 해주었던 동지입니다. 당시 3살 아이를 키우던 박 동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다음 사무실에 나와서 저를 수행하며 뛰어다녔습니다. 저보다 10살이나 어렸지만 여러 면에서 ‘참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선거가 끝난 며칠 뒤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10장 가량 되는 문서를 수줍게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진보신당(현재 노동당)이 나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적은 것이었는데, 그러면서 그는 “당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학생운동을 마치고 생계를 위해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도 언제나 머릿속에는 진보운동가의 삶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람대로 그는 진보신당의 공채에 합격해 언론국장으로 일을 시작했고 발군의 실력과 열정으로 33살에 대변인이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정당, 그것도 지금은 원외인 진보정당의 대변인은 너무도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그는 술을 잘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런 그가 하루는 ‘여기 몇몇 기자들과 함께 있는데 들러줄 수 있느냐’며 전화를 해서 가보니, 학생운동 시절 인맥과 친분있는 기자들을 모아서 ‘왜 여러분이 진보정당 기사를 다뤄줘야 하는지’를 술에 취한 채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푹 쓰러졌지요.

그렇게 자신의 길에 충실했던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몇달 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호소했으나 우리는 그냥 그 순간에만 위로할 뿐이었지요.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그에게 빚을 졌습니다. 수렁에 빠진 진보정당의 길에서 이렇게 외롭고, 허망하게 떠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처음 찾아왔을 때 단호하게 말릴 걸 그랬습니다. 그는 힘에 부칠 때면 ‘박은지는 강한 사람’이라고 위로해달라고 하며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그러나 떠나기 며칠 전, ‘아무리 강하려고 해도 저는 약한 사람인 것 같아요’라며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왜 그때 “강하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 천천히 앞으로 가자” 말을 못했는지 회한이 듭니다.

박은지 동지, 36살 짧은 삶이었지만 우리에게 위로가 무엇이고, 함께 하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남겨진 아들도 잘 챙기겠습니다. 그리고 진보정당도 천천히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어제 모란공원 묘지에는 햇살이 따뜻하게 들었습니다. 이제 편히 쉬소서. 미안합니다.

김종철 전 노동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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