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소리(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예능보유자 이은관 씨
19살부터 78년 동안 ‘현역’ 생활
구전·창작민요 정리해 펴내기도
구전·창작민요 정리해 펴내기도
‘배뱅잇굿’의 대가이자 서도소리(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예능보유자 이은관(사진)씨가 12일 오전 9시20분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
고인은 “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가…”로 시작하는 ‘배뱅잇굿’을 통해 해학과 넉살 좋은 재담으로 반세기 넘게 서민들의 웃음보와 눈물샘을 쏙 빼놓았다.
1917년 강원도에 속했던 경기도 이천군에서 태어난 그는 16살에 황덕렬에게 ‘서도소리’를 배웠다. 철원고 2년을 중퇴하고 19살부터 황해도 황주권번 소리선생 이인수에게 ‘배뱅잇굿’을 사사했다. 철원극장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대상을 차지하면서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해방 전인 43년부터 당대 최고의 인기 만담가 신불출(1905~?)이 이끄는 ‘신불출예술단’에서 활동하면서 구성진 소리와 재담으로 인기를 모았다. 46년에는 ‘대한국악원’ 민요부로 활동했으며, 이후 장소팔(1922~2002), 고춘자(1922~1994)와 함께 유랑극단을 꾸려 전국을 돌며 배뱅잇굿으로 유명해졌다.
‘배뱅잇굿’은 문벌 높은 집안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배뱅이가 18살에 상사병을 얻어 죽자, 그의 부모가 굿을 벌이는데 엉터리 박수무당이 거짓 넋풀이를 해주고 많은 재물을 얻어간다는 ‘1인 창극’이다. 1900년께 용강군 출신의 김관준이 처음 불렀고, 그의 아들 김종조에게 전해졌으며 최순경·이인수 등을 거쳐 고인에게 이어졌다. 특히 57년 양주남 감독의 영화〈배뱅잇굿>을 비롯해 각종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음반 활동을 하면서 ‘배뱅잇굿’의 1인자 자리에 올랐다. 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중 ‘배뱅잇굿’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고인은 또 50여 년 전부터는 틈틈이 신민요와 민속민요를 작사·작곡했고 구전만 되던 민요 140여 곡을 악보로 정리해 99년 <가창총보>도 묶어내기도 했다. 70년 민속예술학원을 설립해 제자 양성에 힘을 쏟아왔다. 별세 직전까지도 서대문 영천시장 부근에 ‘이은관 민요교실’을 열고 직접 제자를 지도했다. 지난해 배뱅잇굿 80돌 기념공연을 펼친 것을 비롯해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공연과 연말 국악방송 송년음악회에 참여했고 지방 무대에도 꾸준히 올랐다.
유족으로는 아들 승주씨, 딸 옥녀·옥분·경림·옥금씨가 있다. 빈소는 한양대병원이며, 발인은 14일 오전 9시다. (02)2290-9460.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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