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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금서로 눈뜨게 한 천하 미식가…네가 있어 행복했다”

등록 2014-04-17 19:11수정 2014-04-17 20:49

김태경 ‘이론과 실천’ 대표.
김태경 ‘이론과 실천’ 대표.
[가신이의 발자취] 김태경 ‘이론과 실천’ 대표를 떠나 보내며…
아직 채 봄도 가지 않았는데, 세월호의 아까운 어린 생명들이 동백꽃처럼 뚝뚝 떨어지던 비보가 날아들던 날 또 하나 아름다웠던 사람, 김태경(사진)이 훌훌 세상의 짐을 벗고 우리 곁을 떠났다.

오호라, 어떤 생명이 귀하지 않으며 어떤 생이 감히 가볍다고 할텐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순의 나이, 그 역시 한 생애 굴곡진 우리 역사의 한 가운데서 불꽃처럼 살다 갔다.

출판인으로, 고난 많았던 민주화의 투사로, 탁월한 미식가요 사통팔달의 인문학자로 일생을 풍운아처럼 살았던 그였다.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0년 후반, 박정희 정권이 우리의 지적인 목마름조차 철저히 차단하여 변변한 읽을거리조차 없었던 시절, 서울대 도서관에 처음으로 들여놓은 복사기를 이용해 루카치, 프란츠 파농, 모리스 돕, 카우츠키 등의 원서를 용케도 발굴·복사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었던 사람도 바로 그였다. 당국의 눈을 피해 그가 복사해온 책을 싼 값에 살 수 있었던 우리는 그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는 진정으로 책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대학 졸업을 얼마 앞두고 체포되어 함께 경찰서로 끌려갔을 때 정보과 형사들이 그의 집에서 압수해온 원서를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아놓았는데, 내 기억으론 거의 두 수레는 될 것 같았다. 까막눈 형사들도 혀를 내둘렀지만 친구들인 우리도 경탄해마지 않았다.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 도대체 그는 그 많은 책의 목록을 어떻게 찾았으며, 구하였는지 지금도 신기할 뿐이다.

책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은 그 뒤에도 이어져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철권을 휘두르고 있을 무렵엔 광화문 뒤에 ‘민중문화사’란 책방을 열어 ‘거기 가면 무슨 책이나 구할 수 있다’ 는 소문에 젊은 대학생, 학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하여 그곳은 그냥 서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임터였고, 토론장이었고, 만남의 광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이론과 실천’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의 출판사를 열어 한국 최초로 <자본론>을 번역·출간했고, 그 덕에 또다시 감옥살이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일본의 헌책방 거리를 걸으며, 일찍이 책을 통해 교양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던 그들을 마냥 부러워하기도 했다. 단언컨대 80년대 초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인문사회출판의 제1세대는 그와 그의 동료들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풍류를 아는 그는 또한 천하가 알아주는 미식가였다. 지나가다 간판만 봐도, 혹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냄새만 맡아도 어느 집이 맛있는 집인지 단번에 알아채었다. 우리는 그의 뒤만 졸졸 따라 가기만 해도 되었다. 어떤 요리사가 이 뛰어난 식객 앞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더할 바 없는 지적인 교양인으로 멋과 맛을 알았던 사람, 내 친구 김태경. 언제가 여름 햇빛 눈부신 안양교도소 뒷마당에서 뚱뚱한 몸을 날리며 족구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 그래도 우린 네가 있어 행복했다. 잘 가게나. 편히 쉬게나.

김영현/소설가


출판운동 헌신…국내 첫 사회과학서점 열기도

평생을 출판문화운동에 헌신해온 도서출판 ‘이론과 실천’ 김태경 대표가 17일 암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60.

고인은 1979년 한국 최초의 사회과학서점인 ‘민중문화사’를 열고 출판문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85년 도서출판 ‘이론과 실천’을 설립했으며, 90년에는 독일어판 원서를 번역한 마르크스의 <자본>(전 9권)을 출간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다.

고인은 서울대 미학과 시절부터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서적을 구해 원본을 복제한 영인본으로 보급하는 등 한국 사회의 금기에 맞섰다.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 3대 의장을 지냈다. 90년대 후반 출판사의 부도 등 시련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는 끝내 출판을 포기하지 않고 운명하기 이틀 전까지도 향후 발간해야 할 책의 목록과 출판의 미래에 대해 걱정했다.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84년 결혼한 뒤 2000년 이혼했고, 슬하에 자녀는 없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인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19일 오전 8시다. (02)207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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