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대곤 문학론>
가신이의 발자취
소설가이자 사업가 라대곤 선생님 1주기에
소설가이자 사업가 라대곤 선생님 1주기에
누구 인생인들 마냥 행복한 시절의 연속일까만, 내게도 어렵고 힘든 때가 있었다. 19년 전 전북 남원의 어느 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이 그랬다. 전주에서 자가용 통근을 하던 어느 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나는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신호등 없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려던 내 차에 직진중인 오토바이가 달려왔고, 12시간 뒤 그만 그 운전자가 세상을 달리해버린 것이었다. 그 황당하고 절망적인 기분, 그리고 끝 모를 죄책감을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두고두고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여하튼 나는 곧바로 구속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구속 다음날 전격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아내 얘기로는 피해자 쪽에서 먼저 요구한 위로금을 다 주기로 해서 그리됐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교사 형편에 3천만원은 거금이었다.
바로 그 무렵 소설가 겸 수필가이자 사업가인 라대곤 회장을 만난 것은 뜻밖의 큰 행운이었다. 글쓰기보다 사업상 명함이나 하나 더 가지려는 거겠지, 그런 생각으로 작품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선 재미가 있었고, 뭔가 진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들이었다. 나는 ‘라대곤 소설’에 대한 느낌을 두어번 정리해 동인지에 발표했다. 그 뒤 이런저런 자리에서 한두 번 만날 기회도 있긴 했지만 별로 교분은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선뜻 3천만원을 내준 것이었다. 다른 어떤 조건도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싶었지만 어김없는 현실이었다. 라 회장은 명쾌했다. “돈 때문 신경 쓰이면 좋은 글 쓸 수가 없어!”
그때 ‘거금 3천만원’은 6년 만에 전액을 갚을 수 있었다. 물론 갚으라는 요구는 없었지만 그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물질적 도움 그 이상의 은혜 아닌가.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라 회장은 ‘신곡문학상’ 제정, 문학잡지 발행, 지역 문인들 사무실 임대 지원 등으로 사회환원을 실천하는, 보기 드문 사업가였다. 그는 1982년 단편소설 <공범자>로 등단해 단편집 <악연의 세월> <굴레> <선물>, 장편소설 <아름다운 이별> <망둥어>, 수필집 <한 번만이라도>, <퍼즐> 등 10여권의 작품집을 발표하고, 채만식문학상 심사위원장, 수필과비평사 회장,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등을 지낸 지역 문단의 어른이었다. 나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간직한 채 2001년 <신곡 라대곤 문학연구>라는 그의 진갑기념문집을 기획해 엮어냈다. 한사코 사양했던 라 회장은 인쇄비를 당신이 내는 조건으로 문집 봉정을 받아들였다.
지난 4월4일 고인의 1주기에는 추모 문집 <라대곤 문학론>(408쪽)을 엮어 영전에 바쳤다. 그럼에도 세월이 흐를수록 새록새록 돋아나는 고마움에 뒤늦게나마 이렇게 추모의 글을 다시 올린다. 생전 말씀처럼, 돈 걱정에 구애받지 않고 글 쓰는 행복을 간직하며.
장세진 문학평론가·전북 삼례공고 교사
※‘가신이의 발자취’는 독자 모두에게 열린 지면입니다. 가족, 친구, 이웃 등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는 마음을 원고지 10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선별해 소개합니다. 전자우편 people@hani.co.kr 또는 팩스 (02)710-0330.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