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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우리 문화에 세계적 보편성 접목 ‘새 길’

등록 2014-08-19 19:29수정 2014-08-19 20:58

강준혁 문화기획자
강준혁 문화기획자
[가신이의 발자취] 문화기획자 강준혁 선생을 보내며
‘한국의 문화기획자 1호’로 불리며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을 개설한 강준혁 초대 원장께서 엊그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선생은 지난해 정년퇴임 때까지 꼬박 10년 동안 길러낸 후학들을 제자가 아닌 ‘문화도반’이라 불렀고, 이에 호응하듯 제자들은 퇴임식 때 헌정한 책의 제목을 <도반 강준혁, 길을 열다>로 붙였습니다. 저녁도 먹지 못한 채 달려오는 사회인 제자들을 위해 늘 빵과 직접 내린 원두커피를 준비해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선생의 연구실을 우리는 ‘북카페’라 이름짓고 좋아했습니다. 나무전등의 부드러운 불빛과 잔잔한 음악이 흐르던 북카페는 문화대학원의 명소가 되기도 했지요.

손수 깎아 만든 나무볼펜을 좋아하고, 컴퓨터와 휴대폰을 쓰지 않는 아날로그 감성, 작은 체구 때문에 더 커 보이던 낡은 가방, 중절모와 사계절 흰색 면옷에 색색의 긴 목도리…. 우리는 누구나 선생의 멋스러운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더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강준혁 선생은 공연, 전시, 축제 등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현장예술 분야에 문화기획의 씨를 뿌린 개척자로, 그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서울대 문리대 시절부터 45년 넘도록 쉼 없이 문화를 기획해온 자취는 공옥진의 병신춤, 이매방의 승무, 김덕수의 사물놀이, 김숙자의 살풀이춤 등 전통 예술로부터 춘천인형극제, 전주세계소리축제, 임진각 세계평화축전, 그리고 최근 몽골의 문화나담축제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그 의미가 깊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선생께서는 어디 번듯한 선진국에 가서 공부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대신 동숭동 서울대 문리대 앞 학림다방에서 음악을 소개하며 오랜 동안 뜻을 닦은 이래 오로지 혼자 길을 열어왔습니다. 바로 그 점에 선생의 힘과 참신성이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선진 문화’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우리의 삶에 뿌리를 둔 문화’라는 소중한 식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강준혁의 문화기획이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닙니다. 문화 민족주의는 자폐적 정체성의 한계를 넘기 어렵지만 선생은 우리 문화의 세계적, 보편적 잠재성을 찾아내 발현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여기에 강준혁의 창조성이 있습니다.

특히 그 터전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 북방 문화의 띠와 연결시켜 통찰해냈다는 점에서 한국 문화의 세계적 원형을 찾음과 동시에 우리 문화의 외연적 확장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 내용적 핵심을 근대 서구문명이 상실한 영적 에너지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삶의 향상을 위한 인류 보편적인 길을 제시했습니다. 지적 에너지에 눌린 혼의 에너지 복원, 그를 통한 인격의 재균형과 향상, 그것이 근대 서구문명의 한계를 넘으려는 강준혁 문화기획의 중심이었습니다.

선생의 문화기획적 상상력은 그처럼 깊고 높은 시선에서부터 흘러나옵니다. 문화기획을 기술적이고 경영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B급’ 기획자들이 따라가기 힘든 문화적 비전이 그의 일과 삶을 높은 경지로 올려놓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창조적인 인물들이 그렇듯이, 선생은 자신의 관점을 쉽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때로 철부지로 보였을 수는 있지만, 동시에 바로 그래서 순수한 청년 같았습니다. 공간사랑에서부터 싹튼 현장예술의 열정이 후학 교육을 위한 다움아카데미와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순수한 혼을 지닌 청년으로 살았습니다. 그 혼이 촛불 잇기처럼 우리들의 혼에 새로운 불꽃을 일으키기 바랍니다.

김용호/성공회대 문화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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