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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심장 울려준 따뜻한 영혼’ 진보의 메아리로 남으리

등록 2014-12-09 18:54

고 김기원 교수의 영정사진.
고 김기원 교수의 영정사진.
가신이의 발자취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언제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들께서 값진 조언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고 김기원 교수는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주시던 분이었다. 학문적 스승으로서, 시민운동의 선배로서, 그리고 인생의 벗으로서 너무나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다. 비단 나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그 분께 너무나 많은 것을 빚졌다.

무엇보다 먼저, 엄정한 경제학자로서 김 교수는 한국경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미군정기 귀속재산에 관한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 자본주의의 출발점에 내재한 보편성과 특수성을 종합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오늘날 한국경제의 명이자 암인 재벌의 축적과정을 생생하게 해부하면서 그 진보적 대안 모색에 천착하는 모습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과제로 통일경제 연구에 몰두하면서 그 선례가 되는 독일로 안식년 연수를 떠났던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시대적 과제를 인식했고,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현실을 분석해 균형감 있게 대안을 제시한, 우리 시대의 탁월한 경제학자였다.

물론 김 교수는 연구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치열하게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동시에 그는 도그마를 거부하고 금기에 도전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랬기에 가장 신랄한 재벌개혁 주창자였지만, 재벌을 타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벌의 거듭남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기에 가장 열렬한 노동조합 지지자였지만, 노동운동의 타성에 침묵하기보다는 노동운동의 혁신을 위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항상 진영논리가 빚어내는 갈등의 한 가운데에 있었으되, 모두가 그의 비판을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헌신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가장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은 그의 맑고 따뜻한 영혼이다. 병약하다 할 수밖에 없는 당신의 육신을 간신히 곧추세우면서 천진한 미소로 사람들을 위로했다. “김용철 변호사, 기운 내시오”라며 건네는 술 한 잔이 천군만마의 울림이었음을 목도했다. 당신의 육신을 무너뜨릴 만큼 자신에게는 엄격했으나 선량한 눈빛으로 사람들에 용기를 주었다. “김상조 교수, 희망을 잃지 마시오”라는 말 한마디에 내 심장이 다시 고동침을 경험했다. 그는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가 그를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시점에 그는 홀연히 우리를 떠났다.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기에,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연을 억지로라도 끊으려는 듯이 말 한마디 없이 떠났다. 그러나 김 교수가 남긴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는 여전히 반향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경제학 논리로, 치열한 실천으로, 따뜻한 사랑으로 밑그림을 그린 참된 진보의 세상을 구현하는 것은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제 우리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소서.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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