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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타고난 재능 끌어올려 몇배나 남기고 간 ‘남트르’

등록 2014-12-25 20:50수정 2014-12-26 09:26

암 진단 전인 2013년 8월 평소 즐기던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 고 남경태씨. 대학 친구 김상현씨가 찍었다.
암 진단 전인 2013년 8월 평소 즐기던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 고 남경태씨. 대학 친구 김상현씨가 찍었다.
[가신이의 발자취] 인문학 해설가 남경태씨를 보내며
‘요강에 걸터 앉은 여인’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여인이 요강에 앉아 오줌을 콸콸 싸며 편안함을 맛본다는 내용입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만든, 수험생들의 스트레스를 약간의 성적 치기로 포장하여 풀어낸 신나는 노래입니다. 넘쳐나는 오줌으로 “해방이 넘쳐나네, 자유가 넘쳐나네”, 라고 외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86년 그는 사회과학 출판사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손을 거쳐 기왕에 오역이 많았던 여러 책이 제모습을 찾았습니다. 그 시절 번역했던 <제국주의론> 등은 운동권 학생들의 세미나 교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첫번째 번역서는 아마도 84년 청하출판사에서 나온 <이해사회학 서설>일 겁니다. 아우트웨이트의 ‘언더스탠딩 소셜 라이프’를 번역한 것입니다. 학부생 시절 동기생과 둘이서 대학원 선배의 이름을 빌어 냈습니다. 학부생이 감히 번역을 할 수는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결국에는 들통 나서 심각하게 의심을 받았습니다만, 훌륭한 번역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단 번역자들의 이름은 빠지고 편집부 번역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번역과 저술의 그의 인생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얘기하면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에 빠져 자를 수가 없습니다. 자르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냥 몰두하게 됩니다. 그의 글도 그렇습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그냥 쭉 갑니다. 유튜브나 방송사 사이트, 팟 캐스트를 찾아보면, 손가락을 뿔처럼 모았다가 손바닥을 크게 활짝 펼쳤다가, 또 슬쩍 검지로 안경을 밀어 올리는 독특한 동작과 구수한 입담에서 그의 흡인력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30여 년 동안 그가 내놓은 140여 권의 책을 열어보면, 박학다식으로 종횡무진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그의 박람강기에 시종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그는 고독한 실존주의자였는지도 모릅니다. 학부 시절 사르트르를 좋아한 그를 친구들은 ‘남트르’라고 불렀습니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어둠에 포위되어 있는 빛을 생각하고, 빛은 국지적이고 어둠은 보편적이라 이해했던 그는 사람들에게 혼자만의 취미를 권했습니다. 바둑과 기타를 애호한 그는, 그 이유로 완성이 없음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늘어도 최종 단계가 없다는 것, 입문은 어렵지만 완성은 없고 그 과정에서 성취와 즐거움을 맛보는 것, 그게 그가 해석한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존의 정점에 선 그를 저는 자신의 ‘달란트’(재능)를 탕진하지 않고 극한까지 끌어올려 다섯 달란트에 다섯 달란트를 더해 세상에 남기고 간 사람이라고 기억합니다. 소명을 다한 자입니다. 자신의 자질에 성실이 더해 인문학이 무엇인지 대중에게 알려준 사람, 인문학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쓸지를 알려준 사람, 우리 모두에게 각자 빛나는 별이 되어 아름다운 밤 하늘이 되자며 ‘생각’하라고 권면한 사람, 저는 그를 그렇게 기억합니다.

문선유/에코넷홀딩스 기획위원·서울대 사회학과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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