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자 화승으로 이름난 일당(日堂) 김태신(사진) 스님이 25일 새벽 1시 원적에 들었다. 세수는 92. 법랍은 27.
일당 스님은 1922년 일본 도쿄에서 명문가 출신인 오다 세이조와 한국인 유학파 신여성 김원주(1896~1971)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위 관리를 지낸 인물로, 두 사람은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했다. 아들을 일본에 남겨 두고 귀국한 어머니 김원주는 문인으로 활약하다 훗날 출가해 수덕사에서 수행하면서 한국 불교 최고의 여승으로 불린 ‘일엽 스님’이 됐다.
그는 91년 출간한 자전에세이 <라홀라의 사모곡>에서 14살 때 수덕사를 처음 찾아갔을 때 일엽 스님이 “어머니로 부르지 말고 스님으로 불러라”라고 물리쳐 눈물만 흘리며 되돌아왔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자신을 양자로 삼아준 이당 김은호(1892~1979) 화백에게서 그림을 배운 뒤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를 나온 그는 화가로 활동하다 중년을 넘긴 뒤 건너와 한국 국적을 얻었다. 66살 늦은 나이에 일엽 스님의 길을 따르겠다며 직지사 산문의 관응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불화나 인물화를 그리는 동양 채색화 기법으로 화승 활동을 했다. 한국불교 미륵종 제5세 종정을 지냈다.
빈소는 고려대안암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9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