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울리히 벡(오른쪽)과 한상진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가신이의 발자취] 울리히 벡 선생 영전에
삶과 죽음은 백지 한장 차이라고 했는데, 진정 우리의 삶은 이렇게 무상한 것인가요? 삶의 유한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선생께서 돌연히 세상을 떠나셨다는 비보를 듣고 쏟아지는 슬픔에 가슴이 메이고 눈앞이 캄캄합니다.
지난 12월 초 파리 회의 때만 해도 선생은 얼마나 혈기 충천하셨습니까? 12월22일 우리가 영상통화를 할 때도 선생은 함께하기로 한 ‘안전도시 서울에 관한 연구’에 열정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청춘 같은 열정으로 새로운 이론의 첨단을 걸으시던 선생께서 이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뜨셨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그렇듯이, 학문사회도 잘게 쪼개져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나침반 구실을 상실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서나 대중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위험에 빠졌고 지구는 자기파괴의 신음을 내고 있습니다. 이 냉혹한 현실을 예리하게 직시하면서도 선생은 희망의 거점을 붙잡았으며 이것을 정교한 이론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지난 30여년간 선생은 세계 방방곡곡 수많은 지식인과 학생 그리고 민중에게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희망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갈수록 커지는 위험사회의 파국 앞에서 선생을 잃은 것은 참으로 애통한 일이며 사회과학의 커다란 손실이자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은 내가 만난 서구 학자들 가운데 가장 다정다감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분이었습니다. 나이도 비슷했고 학문 취향도 비슷했지만 넘치는 유머와 상대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보기 드문 학자였습니다. 게다가 우리 둘은 같은 사회학자 부부로서 대화할 때마다 깊은 유대를 느꼈습니다. 더욱이 선생이 나의 정년퇴임에 맞추어 미소 띤 얼굴로 나의 학문을 조명하고 친구로서 협력을 다짐하는 긴 영상메시지를 보내온 일은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나눈 우정을 생각할 때, 이승에 남아 있는 나는 속절없이 파고드는 상실감으로 통곡의 념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이 슬픔을 어찌 문자로 다 표기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은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상대주의가 미만한 21세기의 지적 풍토에서 인류의 미래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었고 큰 공적을 남겼습니다.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 위험을 직시하면서 비판이론의 눈으로 세계의 탈바꿈과 해방적 파국 그리고 성찰적 근대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특히 선생이 준 커다란 자극은 오래된 서구 중심 사조를 가장 치열하게 물리치면서 동아시아와 대화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실천한 점입니다. 이런 뜻이 지난해 7월 ‘서울학술대회’를 이끌었고 그 결실의 하나를 유수한 국제학술지 <커런트 소시올로지>(2015년 1월호)의 특집으로 출판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출간하는 영문 학술지(2014년 12월호)에도 선생의 글이 특집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선생의 영정 앞에 삼가 두 출판물을 바칩니다.
선생이 남기고 간 과업은 후학들이 이어갈 것을 확신합니다. ‘서울연구’를 같이 수행하여 올 연말에는 ‘동아시아 안전사회를 위한 위험 파수꾼 의회 같은 것을 서울에서 열자’던 선생의 유지를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선생은 한국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세월호 참사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이제는 그만!”이라는 대중의 절규 안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에너지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부디 하늘에서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주문하시고 시민 참여의 문을 활짝 열어 사회 협치로 안전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변함없는 애정으로 지도 편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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