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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3년간 보내준 원고료 ‘사재’인 줄도 몰랐는데…

등록 2015-03-02 19:56

[가신이의 발자취] ‘한울문학’ 편집주간 정희수 시인 영전에
정희수 시인.
정희수 시인.
지난달 25일 정희수(사진)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 1945년생이니 그렇게 서둘러 갈 나이는 분명 아니다. 입원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듯 급하게 떠날 줄은 짐작조차 못했다. 지난겨울 혹독하게 몰아친 한파 때문이었을까. 고래희 접어든 시인은 자신의 시처럼 너무나 허망하게 가버렸다.

“아직 나무들 햇살 한 줌/ 제대로 쥐어보지도 못했는데/ 웬 추위는 그렇게 매운 것인지/ 아침나절 찾아왔던 까치/ 물고 왔던 풀씨는 싹도 못내고/ 더구나 실뿌리도 뻗지 못해/ 몸 웅크리고 쓸쓸히 뒤돌아갔다”(‘꽃샘추위’ 중에서)

막상 그가 떠나고 나니 그가 그냥 시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1987년 <월간문학>, 이듬해 <시대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물의 길>, <풀꽃을 위하여>, <내가 바라보는 하늘> 등 8권의 시집을 펴냈다. 동시에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역문예지 <한울문학>의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내 통장엔 ‘2014년 12월26일, 보낸이 정희수’의 원고료 입금 내역이 찍혀 있다. 나는 2012년 4월호부터 ‘영화평’을 연재해왔다. 맨 처음 정 주간의 청탁을 받았을 때, 농담처럼 ‘원고료 없으면 쓰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는 ‘많이는 못 준다’며 꼭 써달라고 했다. 그러기를 3년. 너무 ‘장기집권’이 아닌가 싶어 2년쯤 되었을 때 그만두려 했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 지난 1월, 원고료는 예정대로 들어왔는데 정작 우편으로 받아온 잡지의 신년호가 오지 않았다. 배달 사고라도 난 것 같아 메일을 보냈으나 며칠간 ‘읽지 않음’이었다. 전화 역시 불통이었다. 가까스로 통화가 된 아들은 와병 사실을 전했다.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호부터 원고료가 들어오지 않아 편집장에게 문의했더니 뜻밖의 회신이 왔다. 지금껏 잡지사 차원에서 고료를 지급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 주간이 사비로 3년 동안 꼬박꼬박 고료를 보내온 것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가 주간으로서 섭외한 지역 작가가 10여명이었다. 물론 나처럼 3년 장기 연재 사례는 드물고 매호 필자가 바뀌었지만, 그들에게 소액이나마 고료를 지급했다면 사비 정도가 아니라 ‘사재’를 들여 책을 만든 것이다. 퇴원해서 만나면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인사할 기회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정 시인은 전주문인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평론가인 내가 문인시화전에 난생처음 시를 출품한 것도 순전히 그의 덕분이다. 전주 동암고에서 36년간 봉직하고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그는 교단 후배여서인지 10년쯤 아래인 나를 각별히 챙겨주었던 것이다. 그때 용기를 내 선보였던 작품 ‘정거장’으로 ‘정지용백일장’에서 대상도 받았다. 그가 축하 선물로 작품을 액자로 만들어줘 지금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다. 액자도 받을 겸 그를 만나러 갔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벌써 9년 전쯤이다.

고인은 노송문학회장 때 글쓰기 재능이 있는 중고생을 뽑아 소정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또 한국녹색시인협회장, 한국녹색문학아카데미 이사장을 맡는 등 전북지역은 물론 문단에 남긴 발자취도 적지 않다. 누구나 왔다 가는 인생길이라지만 너무 빨리 가버린 그가 내내 그리울 것 같다.

장세진 문학평론가·전북 한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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