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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우리 너머 또다른 우리 알게 해 준 당신

등록 2015-09-13 18:48수정 2015-09-13 21:55

가신이의 발자취 버마 민주화 운동가 내툰나잉

조국의 정치현실 한국에 알리려
이국 땅서 투쟁한 행동하는 투사
버마가 민주화 문턱에 있는 지금
이렇게 떠나니 하늘이 원망스러워
지난 4일 마흔일곱살 이른 나이에 숨진 내툰나잉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장의 추도식이 국내 버마 활동가와 한국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장례위원회 주최로 지난 12일 경기 부천 석왕사에서 열렸다. 고인은 누나 모모나잉이 참석한 가운데 13일 화장을 거쳐 석왕사 납골당에 안치됐다. 사진 버마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제공
지난 4일 마흔일곱살 이른 나이에 숨진 내툰나잉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장의 추도식이 국내 버마 활동가와 한국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장례위원회 주최로 지난 12일 경기 부천 석왕사에서 열렸다. 고인은 누나 모모나잉이 참석한 가운데 13일 화장을 거쳐 석왕사 납골당에 안치됐다. 사진 버마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제공
내툰나잉, 이렇게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난 당신이 야속합니다. 아니 참기 힘든 그 고통을 마음만으로도 나누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합니다. 한국에 온 지난 20여년 동안 그토록 고대했던 당신의 조국 버마(미얀마)가 민주화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 이렇게 가시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조국 버마의 암담한 정치현실을 한국 사회에 알리고자 말 그대로 헌신을 다했습니다. 당신은 정치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서 답답한 한국의 법 현실과 지난한 투쟁을 감내했고, 그 정치난민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활동 무대를 한국 밖으로도 넓혀갔습니다. 그 덕택으로 많은 버마 민주인사들이 한국에 와서 민주주의 현실과 경험을 듣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한국의 우리 또한 우리 밖에 또 다른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늘 사보다 공을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가족보다, 연인보다 조국의 문제를, 동지들의 문제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한때 버마의 앞날이 너무나도 암담했을 때, 그래서 우리가 연대의 성과를 회의했을 때도 당신은 우리에게 의지의 낙관주의를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은 원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원칙은 독선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도 항상 겸손했고, 들으려 했고, 늘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습니다.

당신은 행동하는 투사만은 아니었습니다. 정치학과 법학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더 많은 공부를 해 조국의 민주화에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어 실력도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버마가 민주화되면 당신이야말로 한국과 버마를 잇는 공직자가 되기를 기대했고 농담처럼 그런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이 어떠한 사심도 없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오직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이것이 필요한 일인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한국에서 책임졌던 조직의 모체인 버마 내 민족민주동맹(NLD)이 지난 2011년 말 합법화 여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했을 때 누구보다 고민이 컸던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습니다. 당신은 지금의 테인 세인 버마 정부가 놀라운 수준의 정치개방을 추진한 이후에도 그 진정성을 그리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그토록 존경하던 아웅산 수치가 합법공간으로 나아가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너무나 기뻐했고,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스승 같은 존재였습니다. 2007년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교수와 학생의 인연으로 발전한 우리지만, 오히려 내가 궁금한 부분에 대해 당신은 언제나 친절하게 소상히 답해주었습니다. 또한 버마의 많은 민주인사들을 나와 한국 시민사회 활동가들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떠나시니 하늘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어 우리를 지적으로 실천적으로 게으르지 않게 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아니 당신의 바람이 더 큰 울림이 되도록 키워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오랜 기간 이국땅에서 힘겨운 삶을 살았던 당신, 이제 가장 평안한 휴식을 취하시길 빕니다. 그럼에도 오늘 당신의 그 선한 미소가 보고 싶습니다.

박은홍/상임장례위원장·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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