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 전의식
[가신이의 발자취] 고 전의식 선생 2주기를 추모하며
11월22일은 식물학자 전의식 선생님이 소천하신 날입니다. 벌써 2주기를 맞았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땅에서 자라는 온갖 나무와 풀들을 누구보다 사랑하셨습니다. 1994년 서울 천호초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실 때까지 40여년간 교단에서 ‘우리 식물 바로 알기’를 주창하셨고 91년부터는 초·중·고교 생물 담당 교사들의 모임인 한국식물연구회를 결성해 회장으로 봉사하셨습니다. 2013년 84살로 별세하기 직전 가을까지도 매월 2회씩 우리 땅 구석구석 식물자생지를 답사하셨습니다. 그 자취는 ‘꽃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고, 식물을 바르게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며 손수 운영하셨던 블로그(blog.daum.net/kplant1)와 카페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 시대의 식물학자로, 참스승으로, 수많은 연구논문과 저서를 펴내셨습니다. 청주사범에서 수학할 때 ‘물고기 박사’ 최기철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식물학에 입문하게 됐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외래식물, 특히 귀화식물 연구의 선구자셨습니다. 요즈음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서양등골나물, 미국쑥부쟁이, 만수국아재비 같은 외래종들을 맨 처음 찾아내어 우리말 이름을 지어주시기도 했습니다. 가시박, 돼지풀, 단풍돼지풀 같은 외래식물의 생태적 특성과 번식 과정을 밝혀 유해식물의 급속한 확산을 막는 데 기여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땅에서 자라는 잡초 한 포기도 소중한 자원이라 하셨습니다. 답사를 갈 때마다 남들이 외면하는 쓰레기장이나 버려진 공터부터 찾았습니다. 귀화식물, 낯선 식물을 찾아내 사진을 찍고 표본을 만들어 기록으로 남기셨습니다. 그런 잡초들에게도 이름을 붙여주고 더 값진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농업은 잡초와의 전쟁이라 했지만 쇠비름, 땅빈대, 여우구슬 같은 잡초가 항암제로 쓰이는 걸 보면 그 뜻을 되새기게 됩니다.
선생님은 평생토록 발로 채집한 우리 자생식물 4500여종 가운데 3500여종의 표본 2만여점은 대학에, 식물 1000여종의 슬라이드 필름 수백만 점과 장서들을 국립환경과학원에 후학들의 자산으로 무상 기증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선생님은 떠나셨어도, 거룩한 뜻은 후학들의 마음에 송두리째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한라산·백두산의 고산지대, 홍도의 거친 바람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 울릉도와 대청도에서 해주신 한국 동백의 자원학적 가치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연구는 ‘한국 특산식물 자생지 실태조사’였습니다. 선생님께서 못다 한 연구과제를 후학들이 이어받으려고 합니다. 선생님 부디 영면하십시오.
오병훈/한국수생식물연구소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