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씨. 사진 나무를심는사람들 제공
제주도 정착해 힐링 방랑기 들고 돌아온 ‘왕언니’ 오한숙희씨
‘내 삶의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나는 다시 행복해졌다. 내가 누구인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나니 나를 둘러싼 그 모든 조건들을 다시 감당할 용기가 생겨났다.’(서문 중에서)
‘왕언니’가 돌아왔다. ‘왕수다’도 함께 들고 돌아왔다. 방송 진행과 강연, 저서와 상담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여성학자 오한숙희(57)씨가 혹독한 ‘중년 홍역’을 이겨내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3년 남짓 만이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많이 아팠어요. 몸도 마음도 까닭없이 아팠어요. 나만 불행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생각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어요. 처음부터 작정한 건 아닌데 방랑객처럼 전국을 떠돌아다니게 됐어요. 그 길에서 ‘나’를 다시 찾았어요. 그 길에서 배운 인생 고수들의 한 수를 함께 수다로 나누고 싶어요.”
<사는 게 좋다-오한숙희 힐링 방랑기>(나무를심는사람들 펴냄)를 들고 최근 서울 나들이를 한 그를 서촌에서 만났다. <너만의 북극성을 따라라>이후 5년 만에 나온 신간이다.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수석 부소장과 김포여성민우회 상담소장을 맡아 20년 가까이 김포 고촌에 살았던 그는 지난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의 인연으로 내려갔던 제주도에 어머니, 작은딸과 함께 정착했다. 그의 말대로 삶의 조건은 사는 지역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 이화여대 사회학과와 대학원 여성학과를 나와 ‘남녀평등 실천’을 지향했던 결혼생활 뒤 결코 쉽지 않았던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홀로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큰딸과 발달장애 작은딸을 키워온 여성 가장, 그런 녹록지 않은 개인사를 호탕한 웃음과 수다로 풀어내며 수많은 여성들에게 ‘힘과 희망’을 퍼뜨려왔던 그였다.
그러다 문득 “삶의 무게를 1g이라도 줄이고 싶어” 홀로 길을 나선 그는 주어진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행복의 비밀’을 발견한다. ‘내가 쭉정이라는 걸 알고 알곡이 되려고 애쓸 뿐’이라며 100년 된 ‘귀곡산장’ 같은 도장에서 3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영월의 태권도 사범님, 하루 내내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려야 했던 개업 초기를 잊지 않으려 날마다 새 반찬으로 대접하는 식당 주인, 말끝마다 터질 듯이 웃는 하하 여사, 밤마다 세헤라자데 복장으로 인생 천일야화를 꽃피우고 있는 소피아 할머니, 죽지 않으려고 날마다 두부를 만들었다는 30년 맷돌 촌두부 식당 아저씨 형부…. 배신과 가난과 외로움 등등 인생의 문턱은 누구도 피할 수 없었고 누구에게나 신의 한 수가 있었다. “자폐를 가진 딸 희나에게도, 팔순 넘어 화가 이름을 얻은 어머니에게도 있었어요. 그럼 나한테도 있지 않을까? 비로소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 거죠.”
그가 찾은 그만의 한 수는 역시나 ‘말’이다. 스스로 지은 별명은 ‘말무당’이다. ‘나의 말은 사람들을 태우고 달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을 태우고 바람같이 달려 그들을 속 시원한 세상에 데려다주는 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돌이켜 보면 타고난 본분을 다하는 동안에만 나는 신명나게 건강하고 행복했다.’
성산일출봉이 바라다보이는 성산읍 난산리에 작은 집필실 겸 게스트하우스도 마련한 그는 “나처럼 방랑길에 찾아오는 이들과 상담자가 아니라 친구처럼 함께 하고 싶은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새달 19일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출간 기념 토크쇼로 ‘힐링 수다방’을 시작한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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