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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성매매 여성의 고통을 가슴으로 품은 ‘더불어 숲’

등록 2016-01-31 18:48

 왼쪽부터 필자, 배임숙일 인권희망 강강술래 대표.
왼쪽부터 필자, 배임숙일 인권희망 강강술래 대표.
가신이의 발자취
배임숙일 인권희망 강강술래 대표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뒤니까, 근 10여 년 만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큰 울음을, 설움의 통곡을 쏟아냈다. 소리 나지 않아도 계속 눈물이 났다. 내 엄마가 돌아가신 것만큼이나 아프고 아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 같은 사람이 주변에 한둘이 아니었다. 빈소에서는 수많은 딸들이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고, 아파하고, 통곡했다. 슬픔에 목이 멘 아들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엄마로, 아빠로, 선생으로 그리고 꿈으로 살아온 그녀의 삶을 새삼 확인했다.

탈성매매여성운동가였던 배임숙일 인권희망 강강술래 대표가 지난 14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 바로 이튿날 우리 시대의 스승인 신영복 선생 또한 유명을 달리했다. 신 선생이 주창하던 ‘더불어 숲’이 바로 그녀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1998년, 그 뜨겁던 여름날. 일하던 단체의 권유로 휴가를 받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참여한 2박3일 워크숍에서 그녀가 처음 던진 질문은 “언제가 가장 행복했나?”였다. 주저 없이 “지난 94년 특수교육진흥법 개정할 때요”라고 답하자,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띠더니, “운동 얘기 말고, 그대 개인적으로 행복할 때가 언제냐”고 고쳐 물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라고 또 답변했다.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띠며 다시 같은 질문을 했고, 나 또한 재차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 대답에 워크숍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었는데, 나는 영문을 몰랐다. 그녀는 2박3일 동안 내 속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 확인하며, 그것을 솟구치게 했다. 여성운동가이자 동료상담가로서 배임숙일의 진가를 실감했다.

그 뒤로 그녀는 내가 곤혹스럽고, 서럽고, 세상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딱 죽고 싶을 때마다 전화를 주었다. 그녀를 만나거나 통화하면 내 괴로움이, 설움이 사라졌다. 당당하고 힘차게 살아갈 힘이 쑥쑥 만들어졌다. 장례식장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느끼는 ‘나’가 한두 사람이 아님을 확인했다. 하지만 ‘나만의 배임숙일’이 아니었음에 속상하기보다 오히려 기분이 좋고 행복했다.

장례식장에서 그녀의 이름 옆에 ‘58살’이라고 적힌 숫자가 낯설었다. 내 나이 쉰 넷. 네 살 차이다. 가만보니, 그리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내게 스승이었고, 엄마였고, 아빠였고, 선배였고, 범접하기 어려운 큰 어른이었다. 참으로 따뜻하여 언제라도 안길 수 있었고, 언제든지 담대하여 함께 소리칠 수 있었고, 언제나 날카로워 ‘운동’의 전망을 얘기할 수 있었고, 언제든 사랑스러워 함께 웃고, 웃을 수 있었다.

3년 전, 그녀의 들뜨고 ‘신기’에 찬 전화 목소리가 기억에 뚜렷하다. “말갈족아! 우리 오늘 국회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한다.” 만주 벌판에서 시원하게 말 타고 들판을 달리며 자유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을 상징한다는 ‘말갈족’을 닮았다며, 그녀가 지어준 나의 애칭은 생각만으로도 늘 행복하다.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직접 요청해 국회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행사를 한다고 했다. “굉장한 일이야. 정말 멋진 사람들이야.” 그들이 협력하고 연대하는 동안 우애와 사랑으로 함께 한 배임숙일 선생을 칭찬하고 싶다. 그렇게 살다간 그녀를 세상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기억하지 않더라도, 아주 조금은 그녀가 살아낸 그 길의 발자국을 함께 밟는 이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숲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박옥순/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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