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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젊은이들 일깨우던 ‘촌철살인 10분 시국담’ 잊을 수 없어

등록 2016-05-23 19:40수정 2022-03-17 12:21

[가신이의 발자취] 중국어 전문가이자 통일운동가 석규관 선생 영전에
앞줄 오른쪽 셋째가 석규관 선생.
앞줄 오른쪽 셋째가 석규관 선생.
지난 15일 유명을 달리하신 석규관 선생은 오랜 세월 민족·통일운동에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1936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으나 월북 가족 연좌제에 걸려 고통 속에 사셨습니다. 광원, 택시운전에 이어 호구지책으로 중국어 강의를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독특한 교수법과 특유의 입담으로 명강사로 이름을 날리게 됐습니다. 특히 강의 끝에 촌철살인의 ‘10분 시국담’으로 젊은이들을 일깨우려 애쓰셨지요.

저 역시 90년대 초반 언론재단에서 개설한 중국어 강좌를 수강하며 인연을 맺었습니다. 평소 사석에서 선생님은 “나라의 기초는 교육에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좋은 학교를 하나 세워 이 시대에 필요한 민족교육을 해보고 싶어 하셨는데 끝내 그 꿈을 펼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크지 않은 체구지만 강단이 넘쳤고 정신력이 아주 강인한 분이셨습니다. 수년 전 중풍으로 쓰러졌지만 정신력으로 딛고 일어나셨습니다. 이후 힘이 닿는대로 여러 단체에서 민족문제, 통일문제에 열과 성을 보태셨지요.

선생님은 <한겨레>와 인연도 깊습니다. 주주이면서 창간 때부터 서울 은평구 지역의 지국장을 맡아 신문 보급과 한겨레 정신 계승에도 큰 힘을 보태셨습니다. 문상객 중에는 곳곳에서 선생님께 중국어를 배웠던 저같은 제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지국장 시절 같이 고생했던 분들도 여럿 오셔서 새벽까지 빈소를 지켰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셋넷’이라는 자호를 갖고 계셨습니다. 앞에서 ‘하나둘’ 하면 선생님은 뒤에서 ‘셋넷’ 하면서 앞사람의 뒷심 노릇을 하겠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강자 앞에서는 한없이 강했지만 힘 없는 약자 앞에서는 한없이 따사롭고 겸손한 분이셨지요. 비록 중국어 수강을 통해 만난 분이지만 선생님은 ‘그냥 강사’가 아니었습니다. 행동하는 지성인이요, 스승의 면모를 겸비한 분이셨습니다. 불운한 시대를 만나 품은 뜻을 펴지 못하신 것이 안타깝습니다.

선생님은 말년에 가난과 병고로 힘든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그럼에도 저 역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별다른 도움도 드리지 못한 것이 죄스럽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제 고단한 육신을 털어버리고 미지의 새 세상에서 안식을 취하시길 기원합니다.

제 마음 속의 스승이신 석규관 선생님, 우리 선생님, 안식과 영면을 기원합니다.

정운현/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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