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궂긴소식

옥탑방 가득 남기신 ‘처음문화정책’…연구소로 잇겠습니다

등록 2016-05-31 20:09수정 2022-03-17 12:21

가신이의 발자취
‘문화정책가 1호’ 이종인 선생 영전에
이종인 선생
이종인 선생
2013년 여름 선생님과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동문 8명이 모여 ‘문화구름’을 시작하던 그날처럼, 지난여름까지도 ‘빨간 뚜껑’ 소주를 즐겨 찾으셔서 오래도록 건강하실 줄 알았습니다. 가장 값이 싸다는 ‘라일락’ 담배도 선생님께서 태우시면 연기마저 신바람 났었지요.

 지난 28일 새벽, 향년 82. 홀연히 잠드신 영정 속에는 1980년대 한국문화발전연구소장 때 ‘청년 이종인’의 모습이 선연합니다. ‘대한민국 1호 문화정책가’로서,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체계적으로 정립시켜내지 못했던 예술지원 정책과 행정을 매서운 솜씨로 자리매김하시던 눈매가 그대로 살아나는 듯합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으로, 그 무렵 선생님께서 주도해 입안한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은 지금까지도 한국 문화정책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선생님의 일생과 발자취 자체가 ‘처음문화정책’입니다. 초창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국장과 연구실장을 맡아 <문예진흥> 발간과 <문예연감> 창간을 주도하셨지요. 이어 국내 최초의 문화정책 연구기관인 문화발전연구소(현 문화관광연구원)를 맡아, 척박했던 국내 문화예술계 전반의 통계와 자료 조사를 시작해 ‘한국의 문화지표 체계’를 수립하는 일에 몸소 나섰습니다. 2004년까지, 5천억원이나 적립된 문화예술진흥기금을 확충하였고, 공정한 공모지원제도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예술가 지원 말고도 시민 예술강좌와 공연예술아카데미 등을 개설해 시민문화 향유와 신진 문화인력 양성에도 선도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처음문화정책’은 20여년의 공직 활동에서 물러나서도 이어졌다는 점에서 혁혁했습니다. 문화환경진단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문화의 창달과 지역 네트워크에 남다른 열정을 바쳐왔기 때문입니다. 평생 쌓아온 실무 경험과 각종 자료들은 문화정책과 행정의 후진 양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궁합니다.

 두어 달 전, 선생님 옥탑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신과도 같은’ 각종 자료와 책자들을 정리해드렸습니다. 한두달 새 부쩍 더 야윈 몸으로, 직접 짐을 거들며 비로소 방의 제 모습을 확인하셨지요. 한편으로 섭섭하시면서도, ‘문화구름’ 후학들이 자료를 바탕으로 ‘이종인의 처음문화정책연구소’를 개원한다는 얘기에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도 아직 선합니다.

 선생님, 이제 옥탑방에는 주인 잃은 빨간 뚜껑 소주 ?p 병만 남아 있다지요. 처음문화정책연구소 개소식 때 드리려고 준비해놓은 ‘라일락’ 담배와 함께 그 소주병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연구소 책상 위에 자리잡고 있을 겁니다. 그동안 구술해주신 한국문화예술 정책사와 뒷얘기들 잘 새기며 연구소를 키워갈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선생님, 생전 바람대로 어릴 적 물장구치던 무심천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향 청주에 묻히시니 이제 맘 편안하신지요. 빨간 소주 챙겨서 후학들과 함께 곧 찾아뵙겠습니다.

이용배/계원예대 교수·성공회대 문화대학원 동문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정부 “전제조건 없이 만나자”…의료계 “내년 의대정원 입장 분명히 해야” 1.

정부 “전제조건 없이 만나자”…의료계 “내년 의대정원 입장 분명히 해야”

“어르신, 7시간 이상 휠체어에 묶여...일종의 체포·감금죄” 2.

“어르신, 7시간 이상 휠체어에 묶여...일종의 체포·감금죄”

원전 르네상스? 세계 원전산업은 이미 오래전 사양길 3.

원전 르네상스? 세계 원전산업은 이미 오래전 사양길

길가서 배곯은 40일 된 아기…경찰, 새벽에 조리원 찾아 분유 구해 4.

길가서 배곯은 40일 된 아기…경찰, 새벽에 조리원 찾아 분유 구해

숙대 ‘김건희 석사 논문’ 연구윤리위원 교체…표절 의혹 조사 급물살 5.

숙대 ‘김건희 석사 논문’ 연구윤리위원 교체…표절 의혹 조사 급물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