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우는 초여름, 윤진호 교수(사진)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향년 63.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지난 15일 갑자기 부음을 들으니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윤 교수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노동경제학자였다. 근대경제학의 아버지 앨프리드 마셜은 케임브리지대학 초대 경제학부장 취임사에서 경제학도는 모름지기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냉철한 머리’와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셜은 런던의 빈민가 이스트엔드에 가서 빈민에 대한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번영의 시대에 왜 그런 빈민이 존재하는지를 냉철한 머리로 분석하고 빈곤 해소를 위한 정책을 제시하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윤 교수는 노동자들에 대한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치열하게 노동문제를 연구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해온 경제학도였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부부터 박사까지 마치고 인하대에 부임한 윤 교수와 나는 노동경제학 연구자로서 학문적 교류를 시작했다. 임노동연구회를 만들어 경북대·인하대·서울대 대학원생들이 함께 연구하고 토론했다. 우리 둘은 이들 모두 제자로 생각하고 길러내었다. 그 시절 뜨거운 열정으로 연구하고 학생을 지도하는 윤 교수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수많은 훌륭한 연구논문들을 발표하며 윤 교수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진보적 노동경제학자가 되었다. 정부 노동정책 수립에도 기여하고 노동운동 발전에도 헌신했다. 경제노동연구회를 조직해 꾸준히 진보적 경제정책 및 노동정책 연구를 주도했다. 학현 변형윤 선생께서 이사장으로 이끄는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신자유주의 이념과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해왔다. 한국경제발전학회도 만들어 주류 경제발전론에 대응하는 새로운 경제발전론 정립에 기여했다. 2012년에는 <학현 변형윤 교수 대화록-냉철한 머리 뜨거운 가슴을 앓다>를 펴내기도 했다.
윤 교수와 나는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 극복 방향,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 등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 적도 종종 있었다. 노동의 권리와 윤리를 동시에 추구해야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에 대해 그는 노동의 윤리를 강조하면 노동의 권리 문제를 부차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법에서 자본과 정부의 책임과 함께 정규직 책임도 강조한 나에 대해 그는 정규직 책임론이 자본의 책임을 희석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병마를 떨치고 돌아와 논쟁을 더욱 심화시켜 나가주길 바랐는데, 그런 기회를 잃어버렸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고용·임금·복지 면에서 3중의 격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조직률 한자릿수의 노동운동, 주변적 정치세력으로 밀려난 진보, 이 엄중한 한국 현실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지 윤 교수의 냉철한 머리가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제 그가 가고 없으니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인가?
수명을 단축하면서까지 치열하게 연구해온 그는 이제 영원한 휴식으로 보상받아야 한다. 다 못한 일들은 살아남은 우리가 해내야 한다. 노동자들을 사랑했던 경제학자 윤진호, 그의 명복을 빈다.
김형기/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