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한국 지식사회에 학문으로서의 마르크시즘을 본격 소개하고 평생 연구의 화두로 삼았던 정문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0일 낮 12시1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5.
1941년 대구 태생인 고인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68년부터 2007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마르크시즘을 학계에 본격 소개한 <소외론 연구>(문학과지성사 펴냄·1978)에서 그는 근대사회의 대표적 특징인 인간 소외의 연원을 추적하고, 한국전쟁 이후 금기시되던 칼 마르크스의 소외이론을 학문적 논의의 장에 올렸다. 특히 이 책은 숨막히는 군사독재를 겪으며 사회변혁 이론에 목말라 있던 대학사회에서 상당 기간 필독서로 읽혔다.
그는 이후로도 마르크시즘 연구를 계속하며 많은 저작을 냈다.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받은 <에피고넨의 시대>(1987), <한국 마르크스학의 지평: 마르크스-엥겔스 텍스트의 편찬과 연구>(2004),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작을 문헌학적 관점에서 파고든 역작 <니벨룽의 보물: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유산과 그 출판)(2008) 등이 있다.
고인은 마르크시즘 연구와 관련해 2010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비판한 ‘혁명가 마르크스’뿐 아니라 ‘사상가 마르크스’도 중요하다. 그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당대에 대한 인식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김영혜씨와 딸 진경(포곡고 특수교사)씨가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발인은 12일 오전 8시다. (031)787-1500.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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