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국제슬로푸드협회 이사가 지난 1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56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은 국제 슬로푸드 네트워크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였습니다. 한국에서 고인과 슬로푸드 운동을 함께 해온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원일 사무총장이 글을 보내왔습니다.(편집자 주)
병수 형, 나는 형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형은 늘 새로운 것을 만드셨어요. 제가 대학생이던 1989년에 형을 처음 만났지요. 그때 형은 지역신문을 만드셨어요. 그 후 팔당상수원유기농업운동본부를 만들고 생협을 만들고 농업회사법인을 만들고 슬로푸드문화원을 만들고 아시아 슬로푸드 네트워크를 만들고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드셨지요. 늘 시대가 목마르게 필요로 하던 것들을 만드셨지만 형은 어떠셨나요? 제대로 누려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앞으로 새로운 것을 안만들 겁니다. 이미 있는 것 안에서 안주할래요.
병수 형, 나는 형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형은 너무 고집이 세셨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불같은 추진력으로 밀어 붙이셨지요. 덕분에 팔당에 유기농이 자리 잡고 한국이 슬로푸드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불가능한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친환경농업도 좋고 소농도 좋고 슬로푸드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시대와 불화하고 가까운 사람들과도 다투고 심지어 얼마나 많은 욕을 들으셨습니까? 원칙을 굽힐 수도, 형을 멈출 수도 없었던 건가요? 저는 타협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살 거예요.
병수 형, 나는 형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형은 너무 형을 희생하셨어요. 다른 사람의 아픔은 어루만지면서 형의 아픔에는 왜 그렇게 눈 감으셨던 겁니까? 어려우면 어렵다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 말하면서 함께 살아야 하는 거 아니던가요? 형을 떠나보낸 사람들 아픔은 어쩌실 겁니까? 땅을 사랑하고 농사를 사랑하고 소농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버리는 길이라면 나는 형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나부터 챙기면서 이기적으로 살 거예요.
하지만 형처럼 살지 않을 수 없음을 예감합니다. 불의의 시대, 오만의 시대, 죽임의 시대, 아픈 이 시대에 형처럼 살지 않고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농사와 농부, 식탁을 외면하고 어떻게 농부의 쌀 한 톨이라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형을 만나게 될 때 어떻게 얼굴을 똑바로 들 수 있겠습니까?
낡은 것을 혁파하고 원칙을 지키며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사는 길, 형이 가려던 ‘사람에게 가는 길’을 외면할 수 없는 이 시대가 원망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