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궂긴소식

‘꿈꾸는 자작나무’ 손준현 기자를 떠나보내며

등록 2017-04-25 14:03수정 2017-04-25 22:20

25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영결식 엄수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고 손준현 기자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유족과 동료들이 장지로 가는 버스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고 손준현 기자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유족과 동료들이 장지로 가는 버스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고 손준현 <한겨레> 기자의 영결식이 25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엔 유족들과 한겨레 임직원, 문화계 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해 손 기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장례위원장 이제훈 편집국장의 조사와 대중문화팀 동료 노형석 기자의 추모사에, 손 기자의 아내 정현주씨는 “세심하게, 무사히 장례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한겨레 임직원께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어 “남편은 한겨레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너무너무 자랑스러워했다. 또, 정의롭지 않은 연극은 보러 가지도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정의로운 기자였다”며 “저희 남편을 기억해 달라”고 덧붙였다. 영결식에 앞서 평소 일하던 6, 7층 편집국에서는 짧은 노제도 진행됐다. 손 기자는 이날 오후 경북 상주시 서곡동 선영에서 영면에 들었다.

손 기자를 한겨레 구성원의 가슴에 새기며 이제훈 편집국장과, 손 기자의 절친한 동료이자 벗 정태우 선임기자가 함께 쓴 조사를 싣는다. 손 기자와 같이 일해온 대중문화팀 노형석 기자의 추모사도 덧붙인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고 손준현 기자의 아내와 유족들이 손 기자의 책상을 살펴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고 손준현 기자의 아내와 유족들이 손 기자의 책상을 살펴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조사 -‘꿈꾸는 자작나무’ 같은 이를 떠나보내며

고인은 탁월한 편집기자였습니다. 고인은 서른둘이던 1994년 한겨레에 입사해 오랜 세월 편집기자로 한겨레를 빛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박지성의 활약을 함축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제목은 지금도 많은 후배 편집기자들 사이에 회자됩니다.

고인은 ‘현장을 사랑하는 기자’였습니다. 편집 일을 뒤로하고 늦깎이 사회부 기자가 된 뒤 고인은 늘 민주주의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용산 남일당에서 기륭전자까지, 목소리를 잃은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시대가 고통을 호소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고인은 ‘사람을 사랑한 기자’였습니다. 강제 출국 위기에 놓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부터 가난한 젊은 예술인에 이르기까지, 돈과 권력이 없어도 영혼이 맑은 이들의 벗이 되고자 애썼습니다. 고인이 중년의 혼을 불사른 문화부 기자 시절 가깝게 지낸 젊은 예술가들이 고인을 ‘정의롭고 따뜻한 기자’로 기억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다시는 콧등에 낮게 걸친 안경 너머 날카롭게 빛나던 고인의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습니다.

이제 다시는 회사 앞 스핑크스에서 맥주잔을 앞에 두고 세상 모든 고민을 짊어진 듯 대화하고 논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육신이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세상을 떠난 한겨레의 많은 벗들처럼, 고인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리라는 것을. ‘꿈꾸는 자작나무’ 같던 고인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 남아 있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이루도록 애쓰겠습니다.

형수님, 희광·재하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담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시대와 세상, 사람과 한겨레를 사랑했기에 고단했던 고인이 고통 없는 세상에서 평안하기를, 이곳의 가족을 영원히 잊지 않기를, 한겨레의 벗들과 늘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고 손준현 기자의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고 손준현 기자의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추모사 -손준현 선배를 보내며

손준현 선배. 주말에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니 당신은 세상에 없었습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일어난 뒤 선배는 세상 바깥으로 훌쩍 떠났지요. 떠나려는 길을 가로막거나 만류할 말미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 눈앞에서 영영 사라진 뒤에야 작별 인사를 올린다는 사실이 무겁고 아프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세상 밖으로 사라졌다는 의미가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손 선배는 공연을 담당하면서 행복한 탐구생활처럼 취재를 즐겼습니다. 리뷰와 소개 기사에는 관찰자로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인상을 받았으며, 어떤 메시지를 이야기하는지가 명확하게 느껴졌지요. 제목이나 소제목도 편집자 출신답게 늘 깔끔하고 단정한 문구들을 포착했습니다.

문화부 기자에게 중요한 덕목은 자기가 느낀 감성을 독자와 교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손 선배의 짤막짤막 끊어지는 단문식 기사들은 이런 덕목에 누구보다 충실했습니다. 기사와 취재를 넘어 선배의 웃음과 농담에서 배어나오는 인간적인 체취를 모든 동료들이 좋아했습니다. 낙천적이었고, 널널하게 대화하고, 자기 좋아하는 것에 대해 흉금 없이 터놓고 말하기를 즐겼습니다. 손 선배의 이런 풍모는 문화부 부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선배와 일하는 짬짬이 거대한 우주와도 같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회사 옆 맥줏집 스핑크스에서 퇴근주를 마시며 공연계 문화판 뒷담화도 하곤 했지요. 이제 더 이상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겠지요. 그 추억을 가슴에 묻으며 선배를 보내려 합니다. 손준현 선배,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고 손준현 기자의 영결식을 마치고 유족과 동료 등이 장지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고 손준현 기자의 영결식을 마치고 유족과 동료 등이 장지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