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궂긴소식

명연기 ‘닥터 리빙스턴’의 첫 대사처럼 “해피엔딩!”

등록 2017-06-19 21:27수정 2017-06-19 21:34

배우 윤소정님을 보내며
지난 16일 급성 폐렴으로 별세한 배우 윤소정씨가 영정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지난 16일 급성 폐렴으로 별세한 배우 윤소정씨가 영정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1983년 초연 때 한국 연극사장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운 연극 <신의 아그네스>(연출 윤호진) 주역들. 왼쪽부터 고 윤소정·윤석화·이정희씨.
1983년 초연 때 한국 연극사장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운 연극 <신의 아그네스>(연출 윤호진) 주역들. 왼쪽부터 고 윤소정·윤석화·이정희씨.
1999년 앙코르 공연을 위해 13년만에 다시 뭉친 <신의 아그네스>의 주역들. 왼쪽부터 윤석화·고 윤소정·이정희씨. <한겨레> 자료사진
1999년 앙코르 공연을 위해 13년만에 다시 뭉친 <신의 아그네스>의 주역들. 왼쪽부터 윤석화·고 윤소정·이정희씨. <한겨레> 자료사진
1983년. 무대를 가득 채운 자욱한 담배 ‘럭키 스트라이크’의 연기 속에서 냉철한 지성으로 진실을 파헤쳐 나가던 닥터 리빙스턴. 제가 실험극장의 연출가로 있을 때, <신의 아그네스>란 작품에서 연출과 배우로 만난 고 윤소정은 지성적이고 냉철한 역할에 관한 한 따라올 배우가 없을 정도로 특별한 재능을 지닌 배우였습니다. 당시에 드물었던 10개월의 장기공연으로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신의 아그네스>에서 고인이 보여줬던 ‘닥터 리빙스턴’의 연기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연극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이니, 고인의 연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인은 특별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항상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인은 많은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치밀하게 배역을 분석하고, 무대에 서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연습을 했습니다. 매회 공연이 마치 첫 공연인 듯 긴장하고 몰입하던 고인의 모습,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에도 늘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다고 말하던 고인의 모습은 저뿐만 아니라 함께 연기를 했던 배우들에게도 귀감이 되었습니다.

1991년에 <실비명>이라는 작품에서 다시 만난 고인은 세월의 흐름만큼 한층 더 깊어진 매력으로 제가 기대한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고인이 맡은 역할의 비중을 늘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본 공연이 끝난 뒤 하차하게 된 고인과 지방공연까지 함께하고 싶어 세 번이나 찾아가 부탁할 정도로, 고인은 연출가로서 제가 늘 함께 작품을 하고 싶은 소중한 배우였습니다.

지난 2일 골프를 함께 친 뒤 찍은 고 윤소정씨의 마지막 사진. 가수 남궁옥분씨가 17일 에스앤에스를 통해 공개했다.
지난 2일 골프를 함께 친 뒤 찍은 고 윤소정씨의 마지막 사진. 가수 남궁옥분씨가 17일 에스앤에스를 통해 공개했다.

불과 한 달 전, 연극인들의 모임에서 만난 고인은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었습니다. 그 때문에 고인이 갑작스럽게 별세했다는 비보가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직 보여줄 게 더 많은, 후배들에게 늘 귀감이 되어주던 존경스러운 배우 한 명이 또 세상을 떠났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고인을 추억하며, <신의 아그네스>에 나온 닥터 리빙스턴의 첫 대사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해피엔딩! 그건 당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그것을 추구하며, 또한 얼마나 절실하게 그것을 필요로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늘 무대를 절실하게 생각하고, 무대 위에서는 철저한 완성을 추구했던 배우 고 윤소정. 과연 연기 인생에서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구축해 나갈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있을 수 있을까요. 고인이 자신만의 매력과 스타일로 생명력을 불어넣은 무대 위의 순간들은 오랫동안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윤호진/연출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