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영웅이자 육상 원로 서윤복옹이 27일 새벽 4시40분께 별세했다. 향년 94.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이날 고인이 치매로 17년간 병상에 누워 있었다고 밝혔다.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24살이던 47년 4월19일 미국 ‘보스턴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25분3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당시 세계마라톤 대회는 올림픽을 빼고는 보스턴 대회밖에 없었다. 뉴욕마라톤 대회 등은 70년대 이후에 생겼다.
그의 보스턴 마라톤 사상 첫 동양인 우승의 파장은 컸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의 어렵고 힘든 시절에 국제마라톤 대회를 제패하고, 그것도 세계신기록을 작성해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오랜 기간 서윤복옹을 지켜본 양재성 대한육상경기연맹 고문은 “그때 정부도 없는 미군정 치하였다. 날마다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좌익은 남산에 모여 데모를 하는 등 극도의 혼란기였다. 그때 우승 소식이 들리자 2500만 남쪽 국민이 모두 다 함께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구 선생도 울고 이승만 선생도 울었다. 지금껏 한국이 딴 어느 메달보다도 값진 금메달이었다”고 회상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시상대에서 우승 월계관을 쓴 서윤복 선수.
그는 애초 미국에 건너갈 때부터 힘든 여정을 거쳐야 했다. 미군정의 도움으로 여의도 공항에서 군용기를 타고 하와이를 거쳐 보스턴까지 가는 데 보름이 걸렸다고 한다. 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고 손기정옹이 감독을 맡았고,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고 남승룡 선수가 그와 함께 뛰어 12위를 기록했다. 양 고문은 “당시엔 지금처럼 좋은 운동화도 없었다. 윗부분은 가죽, 아랫부분은 타이어 고무를 덧댄 신발을 신고 뛰었다”고 했다.
김구 선생은 그가 귀국하자 발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뜻의 ‘족패천하’(足覇天下) 휘호를 써주었고, 이듬해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몇십 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는데도 신문에 많이 나오지 못했다. 그대는 겨우 2시간 조금 넘게 뛰고도 신문의 주목을 받는구나”라는 농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서옹은 선수 은퇴 뒤 육상 지도자로 후배를 육성했고, 체육 행정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그의 일대기를 써낸 양 고문은 “서울 숭문고를 나온 서윤복옹은 회계나 행정에도 뛰어났다. 문무를 겸비해 후배를 야단칠 때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고인은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 부회장, 고문,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을 지냈고, 2013년에는 대한체육회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됐다.
스포츠 영웅이었지만 국가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연금도 받지 못한 채로 부인과 딸, 사위 등 가족이 오랫동안 병상을 지켰다. 한국체육인회가 월 30만~50만원씩 지원을 했고, 육상인이나 숭문고 후배들이 생일날과 4월19일 보스턴 마라톤 우승 기념일에 찾아가 인사를 했다고 한다.
장례는 대한체육회장으로 거행된다.
유족으로 아들 승국씨, 딸 정화·정실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9일 오전 9시다. (02)3010-2292.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