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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삶과 죽음은 어리석은 경계라 했으니…다시 ‘지혜’로 오세요”

등록 2019-10-29 19:28수정 2022-03-17 12:14

[가신이의 발자취] ‘기독교 민주화운동가’ 김경남 목사를 추모하며
지난 23일 인천의료원에서 열린 ‘고 김경남 목사 추모의 밤’에서 필자 김영주 목사가 진행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지난 23일 인천의료원에서 열린 ‘고 김경남 목사 추모의 밤’에서 필자 김영주 목사가 진행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김경남 목사님, 아니, 형. 그렇게 가셨습니까? ‘광주’의 벗들이 그리워 갔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질척거리고 있는 세상이 보기 싫어 가셨습니까. 유신 헌법 하에서 법조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택한 목사의 길도 그렇게 마뜩치 않았습니까. 하기야 민주사회를 위한 열망 하나 만으로 달려왔던 형의 눈에는 오늘의 우리 현실은 매우 분통 터질 일입니다. 유신 헌법 하에서 법조인이 된 사람들이 사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몰역사적인 목사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국민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민청학련, 부마항쟁, 5·18항쟁, 6·10민중대항쟁을 거쳐 마침내 촛불혁명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폄훼하고 있으며 심지어 모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셨습니까. ‘광주’의 벗들에게서 오늘의 현실을 타파할 지혜를 구하러 가셨습니까. 아니면 하느님께 오늘의 한국교회를 고발하고 하늘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가셨습니까. 그래, ‘광주’의 영령들은 무어라 합니까. 하느님은 어떤 위로와 조언을 주셨습니까. 언젠가 형이 말했지요. “인간의 죽음과 삶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구분해 놓은 경계입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것이고 죽은 것이나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곁을 떠나지 마시고 지혜로 오십시오, 형의 주검을 광주 망월동에 묻고 슬픈 마음으로 돌아서며 형과의 헤어짐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어리석은 우리를 깨우쳐 주십시오.

지난 24일 고 김경남 목사 장례식이 광주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됐다. 사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지난 24일 고 김경남 목사 장례식이 광주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됐다. 사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지난 14일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고 김경남 목사의 장례식에 문재인 대통령의 근조기가 놓여 있다. 사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지난 14일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고 김경남 목사의 장례식에 문재인 대통령의 근조기가 놓여 있다. 사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형, 잘 사셨습니다. 법조인의 길을 포기한 것도, 목사의 길을 택해 끊임없이 정의와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것도, 그리고 고문과 옥살이 값으로 받은 배상금을 푸른 꿈 고등학교 건립을 위해 내어놓고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던 선생님들을 격려하고 지도했던 것도….

무엇보다 형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매우 헌신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시절 한국 민주화운동을 위해 한 모퉁이를 감당했던 했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사회선교협의회, 교회협 인권위 사무국장, 푸른꿈고교 교장, 한국기독교사회연구원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장으로 헌신하며 큰 족적을 남긴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동지회의 일본자료실장으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와의 가교 노릇을 하셨으며, 일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협에 재일동포인권협의회를 조직하여 재일동포들의 인권을 위해 크게 활동하셨습니다. 특히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일어나자 그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했던 형의 활약은 우리 역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형, 그 유서대필조작사건의 책임자들이 아직도 국회의원으로 건재하고 있으며 반성 없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들이 오히려 민주화운동에 반격을 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매우 속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인권과 민주주의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추운 겨울 민주주의를 위해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바람이 배반당하지 않도록 맡은 자들이 삼가 조심하며 전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 23일 형을 추모하는 밤에 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큰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산자여 따르라!’ 형의 삶과 지혜를 따르기 위한 우리들의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죽은 것 같으나 산 자로 살아 있어, 우리가 살아있으나 죽은 자로 살지 않도록 지혜로 용기로 희망으로 오소서.

김영주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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