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브라질의 은사’ 자이메 레르네르 영전에
![1997년 5월 브라질 파라나 주지사이던 자이메 레르네르(왼쪽)를 방문해 집무실에서 첫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한 필자 박용남(오른쪽) 소장. 사진 박 소장 제공 1997년 5월 브라질 파라나 주지사이던 자이메 레르네르(왼쪽)를 방문해 집무실에서 첫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한 필자 박용남(오른쪽) 소장. 사진 박 소장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00/420/imgdb/original/2021/0601/20210601503703.jpg)
1997년 5월 브라질 파라나 주지사이던 자이메 레르네르(왼쪽)를 방문해 집무실에서 첫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한 필자 박용남(오른쪽) 소장. 사진 박 소장 제공
세계 3대 보행자 전용 ‘꽃의 거리’ 유명
‘간선급행버스 시스템’ 250개 도시 퍼져 1997년 파라나주 지사때 첫 현지 인터뷰
2000년 책 펴내 한국에 소개한 ‘인연’
“도시는 문제 아닌 문제의 해결책” 설파 아아, 내게 도시를 바라보는 길을 열어 주고 눈을 주신 스승께서 돌아가셨네요.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유명한 브라질 남부 파라나주의 주도 쿠리치바(꾸리찌바)의 시장을 3차례나 지냈고, 파라나 주지사도 2차례나 맡았으며, 2002년부터는 국제건축연맹(UIA)의 회장을 지냈던 자이메 레르네르 선생님께서 지난 5월27일(현지시각) 오전 5시10분 쿠리치바의 에반젤리쿠 매켄지대학병원에서 영면하셨습니다. 말년에 만성신장질환으로 고생하시다가 83살을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대전 의제21 사무처장을 맡고 있던 지난 1997년 5월 다큐멘터리 <생명시대>(KBS 1TV) 제작 때 현지 자문을 맡아 2주일 넘게 쿠리치바에 머물면서 시작된 선생님과의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요. 처음 인터뷰를 하면서 ‘세계 3대 보행자 전용거리’ 가운데 하나라는 ‘꽃의 거리’와 ‘간선급행버스 시스템(BRT)’의 탄생 비화를 말해 주실 때 제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가슴이 다 뜁니다. 그때 선생님에게 도시를 어떻게 보고 있고, 도시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죠. 그러자 선생님은 거북이를 예로 들며 알기 쉽게 제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거북이의 등껍질이 도시가 짜인 형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등껍질을 잘라낸다면 거북이가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울까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셨죠. 그리고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도시에서 우리가 ‘그런 어리석은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하셨습니다. 국제사회의 인지도가 워낙 높아선지 수많은 정치인과 시장들이 선생님에게 자문을 구하려고 줄지어 방문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마다 늘 얘기해준 말이 지금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도시는 문제가 아니고, 문제의 해결책이다”라고 믿는 선생님은 “예산에서 뒷자리 0을 하나 뺄 때 창의성이 시작되고, 0을 두 개 빼면 더욱 좋다”고 말하셨죠. 그러면 우리 도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재원 부족으로 생긴 공백을 ‘도시침술’을 이용해 되살리신 것은 도시 행정가들은 물론 도시 전문가들에게도 아주 귀감이 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선생을 마음 속의 스승으로 깊이 모시고 있었습니다. 정말 유머도 많고 재치가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뵌 것은 2012년 ‘리우(Rio)+20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을 방문해 목민관 클럽의 시장·군수들과 한국대표단에게 특강을 해주시도록 부탁을 드렸을 때입니다. 그때 제가 쓴 <꿈의 도시 꾸리찌바>(녹색평론사 펴냄) 책을 드리자 영어로도 출간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었는데, 그 소망을 이뤄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쿠리치바도 없었겠지만, 제가 이 도시를 소개하는 책을 쓸 수도 없었겠죠.
![필자가 2000년 처음 펴낸 <꿈의 도시 꾸리찌바>는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꼽히며, 자이메 레르네르의 생태도시 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사진 녹색평론사 제공 필자가 2000년 처음 펴낸 <꿈의 도시 꾸리찌바>는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꼽히며, 자이메 레르네르의 생태도시 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사진 녹색평론사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368/imgdb/original/2021/0601/20210601503702.jpg)
필자가 2000년 처음 펴낸 <꿈의 도시 꾸리찌바>는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꼽히며, 자이메 레르네르의 생태도시 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사진 녹색평론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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