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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종교마다 먹는 김치 따로 있나요”

등록 2006-02-14 17:34수정 2006-02-15 14:08

붓다가 처음 깨달음을 전한 녹야원에서 삼소회원들이 종교 간 평화를 위한 침묵 명상을 하고 있다.
붓다가 처음 깨달음을 전한 녹야원에서 삼소회원들이 종교 간 평화를 위한 침묵 명상을 하고 있다.
마음벽 허무는 삼소회 성지순례

부부 간에도 사네 못사네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전혀 다른 종교인들이 함께 먹고 잔다면? ‘기획된 연출’이 아니라면, 큰 ‘차이’로 인한 당혹감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지난 5일 전남 영광 원불교 성지를 출발한 삼소회의 순례엔 불교 비구니 스님 5명과 원불교 여성 교무 6명, 가톨릭 수녀 3명, 성공회 수녀 2명이 참여했다. 한국에서 성공회는 개신교에 포함되기에, 이번 순례엔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한국의 주요 종교들이 모두 함께 한 셈이다. 더구나 이들은 자기 종교에 몸과 마음을 던진 수도자들이다. 이들은 머리 모양과 의복서부터 다르다.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7년 간 <차 한잔의 선율>을 진행해 이번 순례에도 주로 마이크를 쥐고 사회를 보는 진명 스님은 "깎은 중(비구니)과 (머리) 긴 중(교무), (베일을) 쓴 중(수녀), 세 종류의 중들이 함께 간다"고 했다. 머리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수도자라는 점을 유머로 표현한 것이다.

규율 강요하는 자기 모습에 ‘화들짝’ 놀라
순례 동행은 ‘전생 인연’이자 ‘하느님 은총’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대탑과 처음 깨달음을 전한 녹야원에서 기도를 할 때 스님과 교무들은 합장을 하고, 3배를 올렸다. 반면 수녀들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맞잡은 채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평화명상을 할 때는 침묵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늘 침묵 속에서 지낼 수는 없는 일. 이들은 실생활 속에서 서로 다른 점도 알게 됐다. 보드가야의 호텔에 머물 때 수녀가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이 "그 쪽에선 고기를 먹는군요?" 하고 물었다. 스님은 이어 한국서부터 젓갈을 가져온 교무에게도 비슷한 지적을 해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한 스님은 교무가 가져온 김치 옆에 다른 김치를 내놓으며, ‘이 김치엔 오신채(절에서 금하는 파, 마늘 등 5가지 채소)를 넣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교무는 ‘김치를 먹으면서도 불교 김치, 원불교 김치를 따져야 하겠느냐’고 뼈 있는 대꾸를 하기도 했다.

사고방식에서도 ‘코드’가 다른 경우가 많았다. 스님과 교무들은 ‘이렇게 함께 순례를 하게 된 것도 분명히 전생부터 깊은 인연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후생’과 ‘인연’을 강조한 반면 수녀들은 ‘하느님의 깊은 은총’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종교에 열려 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자기 종교인에게나 해당 될 규율을 다른 종교인에게 강요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순례는 이처럼 매번 많은 것이 다름을 확인하는 여정이다. 여성 특유의 미소와 자애로 서로 이해하고 포용했지만 이들에게 순례는 실생활과 사고방식에서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를 몸으로 체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 한신대대학원장으로 목회 중인 김경재 목사는 순례를 떠나기에 앞서 삼소회원들을 불러 성금을 전달하며,며,“실생활을 함께 하며, 순례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종교에 대한 진정한 체험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진명 스님은 “수녀가 스님이나 교무를 따라 합장을 하거나 3배를 하지 않는 것이나 스님이나 교무가 성호를 긋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상대가 자기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불편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상대를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한 게 삼소회가 함께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마리아 수녀도 “우린 잡탕밥이 되려고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며, “자기의 종교를 분명히 드러내면서,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13일 새벽 불교 성지가 있는 인도 순례를 끝내고, 23일까지 영국, 이스라엘,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기독교 성지 순례를 시작했다.

이번엔 불교 스님과 원불교 교무들이 좀 더 큰 다름에서 많은 것을 배울 차례가 된 것이다.

인도/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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