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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민중·생명 현장서 신학 펼친 ‘기독교 지성인의 모범’이셨죠”

등록 2022-04-10 18:47수정 2022-04-11 16:24

[가신이의 발자취] 김용복 박사를 추모하며

고 김용복 박사는 지난 10일 경기도 양평군 국립하늘숲수목원에 잠들었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제공
고 김용복 박사는 지난 10일 경기도 양평군 국립하늘숲수목원에 잠들었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제공
보장된 안락한 학자의 길 대신
민중, 평화통일, 생태 운동의 길
한국 민중신학 세계 알린 전도사
90년대 이후 생명사상 적극 개척
‘생명 살리기’ 모임 여럿 만들고 주도

“고인이 깐 초석서 뭘 할지 찾을 때”

며칠 사이 민중신학계의 두 어른이 돌아가셨다. 서광선 선생이 한 달 보름 전쯤 돌아가시더니, 김용복 선생이 향년 83세로 지난 7일 우리를 떠나셨다. 두 분은 신학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큰 별이었다. 김용복 박사는 연세대 철학과와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 신학교를 나온 전도가 밝은 인재로서, 제도권 상아탑의 실력 있는 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보장된 안락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민주화운동, 민중운동, 평화통일운동, 국내와 세계 에큐메니칼(교회 일치)운동, 생태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학문과 실천을 연결해 이러한 운동에 힘을 보탰다. 실천적인 학자의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실천적 연구활동을 펼쳤다. 고인은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서광선 등과 함께 한국의 민중신학을 개척하였고 이를 전 세계에 알린 전도사였다. 민중이라는 말을 영어로 ‘minjung’으로 표기하게 된 것도 그의 공로였다.

늦게나마 깨달은 것은 그가 걸어온 길, 그의 삶과 결단이 옳았다는 것이다. 그는 실천과 학문의 연결고리로서 처음에는 민중,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생명이라는 화두를 설정했다. 민중에서 생명으로 넘어가면서 인간 역사보다는 자연의 역사를, 부정과 혁명의 ‘변증법’보다는 ‘수렴통합’을 강조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치환을 통해서 그는 많은 글을 쏟아낼 수 있었다. 즉, 그의 테제는 “민중이 역사의 주체”에서 “생명이 우주의 주체”로 승화 발전했다. 민중에서 생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역사와 언어(담론과 이야기)의 역할이 약화 혹은 배제되기도 했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의 새로운 말들(담론)을 쏟아내는 태세를 갖춘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매우 현명했다!

지난 2017년 열린 서울 새문안교회 대학부 30년사 출판기념회 때 고 김용복 박사가 초창기 대학부를 지도한 인연으로 축사를 했다. 왼쪽부터 김종희, 이근복, 김종열, 변창배, 김용복, 류태선, 김형기, 진방주, 권진관(필자) 목사. 사진 새문안교회 제공
지난 2017년 열린 서울 새문안교회 대학부 30년사 출판기념회 때 고 김용복 박사가 초창기 대학부를 지도한 인연으로 축사를 했다. 왼쪽부터 김종희, 이근복, 김종열, 변창배, 김용복, 류태선, 김형기, 진방주, 권진관(필자) 목사. 사진 새문안교회 제공
2021년 11월에 ‘죽재 서남동의 민중신학과 민주화운동 재조명’이라는 제목으로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학술회의를 할 때 서광선 선생은 오셔서 인사말씀을 해주셨는데, 김용복 선생은 오시지 못하고 원고만 보내서 필자가 대독했다. 그때 이미 선생은 몸이 아파서 인하대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중이었다. 선생이 보내준 원고는 그 내용이 신선했지만, 문법이나 철자가 엉망이었다. 그땐 웬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선생이 매우 어려운 상태에서 최후의 글을 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도 그의 언어는 생명에 관한 언어였다. 사태들을 생명의 관점으로 보고 생명의 보존, 해방을 창조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 담론으로부터 우주의 주체로서의 생명으로 그 담론 구조를 철저하게 바꾸고 세웠다. 그는 생명학 서설을 한글과 영문으로 각각 쓴 뒤에 신학적 종교적 성찰을 쓸 계획을 가졌었다. 유고를 모으면 책이 몇 권은 될 것이다.

선생은 기독교 지성인이 걸어가야 할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상아탑이나 연구실이 아니라, 생명의 현장이 연구의 현장이라고 믿었다. 생명을 살리는 일들을 위해 끊임없이 모임을 만들었고, 주도했다. 요즘과 같은 비대면 시대에는 해외에 나가지 않고 국제적인 행사를 온라인으로 활발히 했다. 그는 한국의 지성인이 한국어에 고착되어 있는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모임이 협동조합형태로 만들어져서 자본주의 시장 경쟁 구조 속에서 대안의 결사체가 될 것을 꿈꾸었다.

사람들이 김용복 선생을 일컬어 꿈꾸는 영원한 소년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의 꿈은 결실을 보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국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이다. 30년 역사를 가진 이 단체는 선생의 꿈의 결실 중 하나였다. 이처럼 꿈이 열매를 맺고 있는데, 그리고 아직도 민중신학은 갈 길이 먼데 선생은 이렇게 떠나셨다. 스승이었지만, 늘 친구처럼 대해 주셨던 선생을 보내는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라, 선생이 깔아놓은 그 초석 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권진관/성공회대 신학과 은퇴교수·죽재서남동목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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