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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사제도 없다… 설교도 없다… 오직 침묵뿐

등록 2006-02-21 18:04수정 2006-02-22 14:01

우드부룩에서 퀘이커들과 함께 침묵 명상 중인 한국 여성 수도자들.
우드부룩에서 퀘이커들과 함께 침묵 명상 중인 한국 여성 수도자들.
삼소회, 영국 퀘이커 공동체 우드브룩 가다

2만여 평의 푸른 잔디밭과 오랜 연륜을 나타내는 회향나무, 그리고 숲에 둘러싸인 호수. 이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마하트마 간디와 함석헌 선생이 비폭력 평화운동의 영감을 얻었다. 영국 버밍엄의 퀘이커공동체 우드부룩에 이번엔 한국의 여성 수도자들이 왔다.

지난 6일부터 인도의 불교 성지 순례를 마치고 13일 영국에 도착해 곧바로 우드부룩에서 1박2일간 머문 가톨릭과 성공회 수녀, 불교 비구니 스님, 원불교 교무 등 16명의 삼소회 회원들은 퀘이커들과 대화하고, 퀘이커와 함께 침묵 명상에 잠겼다. 13일 밤 7시45분 ‘침묵의 방’. 일체 어떤 의식도 없는 퀘이커들의 기도는 침묵으로 시작된다.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대신 ‘친우회’ 모임만을 갖는 퀘이커들은 사제나 목사도 없고 설교도 없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빛이 있다고 믿는 퀘이커들은 침묵을 통해 각자가 그 빛에 도달하도록 한다. 각자는 함께 모여 침묵하며, 침묵 도중 영감을 받은 사람이 가끔 그대로 표현할 뿐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전통 아래서 탄생했지만, 불자퀘이커, 무슬림퀘이들로 있을 정도로 기독교 외 다른 종교들도 퀘이커의 침묵에서 깊은 영성을 체험한다.

“당신 신앙은 무엇이오” 묻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깨닫도록

한국에서 온 수도자처럼 여성인 제니퍼 학장은 “퀘이커들은 상대방이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 지 묻지 않는다”며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퀘이커의 삶으로 단순함, 융화를 위한 진리 추구, 평등, 어떤 정의라는 이름으로도 살상과 폭력을 허용치 않는 평화 등의 가치를 설명했다.

제니퍼가 강조한 퀘이커는 다름과 차이를 배제한다는 것. 다름과 차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각자의 구실만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퀘이커에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금기’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퀘이커 친구가 도박을 한다면 “넌 도박을 하기 때문에 퀘이커를 할 수 없어”라고 말하기보다는 스스로 옳은 것을 선택하도록 자연스럽게 돕는다는 것이다. 1650년 퀘이커를 창설한 영국의 조지 폭스에게도 늘 칼을 차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폭스는 “다른 사람이 위협을 느끼니 그렇게 하지 마라”또는 “칼을 버려라”고 말하지 않고, 어떻게 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지 스스로 깨닫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그 뒤 친구가 “이 칼을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폭스에게 물었을 때, 폭스는 “네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답했다고 제니퍼는 설명했다.

뭔가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 내면의 신성과 불성을 존중하며, 스스로 빛을 찾도록 돕는 사람들. 삼소회원들은 기차와 비행기 안에서 이틀이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여독에도 퀘이커의 침묵 속에서 남다른 평화와 화해를 경험했다.

이 곳의 정식 명칭은 우드부룩연구센터다. 1870년 퀘이커 교도인 조지 케드베리라는 거부가 살던 집을 퀘이커 교단에 기증했다. 이곳 도서관은 10만여종의 자료와 3만여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다. 한국인으로 팔당에서 유기농을 하는 김병수씨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홍보국장 황필규 목사 등이 머무는 등 꾸준히 한국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버밍엄/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성공회 ‘고향’ 캔터베리 대성당도 방문
‘교회사 터부’ 떨치듯 치솟은 위용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스님과 원불교 교무 등이 수녀들과 함께 설명을 듣고 있다.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스님과 원불교 교무 등이 수녀들과 함께 설명을 듣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캔터베리가 있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로 유명한 이곳에서도 백미는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인들과 세계 7천만 성공회 신자들의 정신적인 고향인 캔터베리 대성당이다.

세계 종교의 성지를 순례중인 한국의 여성수도자 모임 삼소회원들이 14일 캔터베리를 찾았다. 대성당의 좁은 입구에서 삼소회원들을 맞이한 이는 하얀 수염의 수사 콜린 월 프레이도와 한국인 수사 최 스티븐이었다. 그들의 안내를 받아 정문에 들어서니 푸른 잔디밭 가운데 고딕식 석회석 성당이 서있다. 거대하다. 그 위용이 하늘에 맞닿아있는 듯하다. 내부에 들어서면 건물이 위용이 더욱 세세히 드러난다.

대성당엔 성공회 신자들의 가슴 속에 깊게 아로새겨져 있는 성 토머스 베케트가 암살된 장소에 그를 기리는 상과 묘가 조성된 곳이 있다. 베케트는 교회를 억압하려던 헨리 2세를 맹종한 4명의 기사에 의해 살해됐다.

대성당은 6세기 말 로마에서 기독교 포교를 위해 찾아온 성아우구스티누스가 켄트 왕을 개종시킨 뒤 세워졌다.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엔 교회의 역사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한국의 여성수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건물과 화려한 내장만이 아니었다. 로마 교황청 중심의 시스템인 로마 가톨릭과 달리 각 주교가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지방 분권으로 성공회는 2천년 간 교회사를 지배해온 억압과 터부의 체제를 가장 앞장서 청산해가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여성 사제를 허용해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선 여성 주교까지 탄생했다. 대성당 여사제인 캐논 클래어는 “신자들도 여사제들을 아주 좋아한다”고 만족해 했다.

또 흑인인 존 센타무 대주교가 캔터베리대주교에 이어 세계성공회 서열 2위엔 요크 대주교로 2달 전 임명될 정도여서 앞으로 10년 안에 영국 내에서 아시아인 출신 주교도 탄생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16세기 영국왕 헨리 8세가 이혼과 결혼에 반대한 가톨릭과 결별해 영국 국교로 탄생한 성공회는 형식상 영국 여왕이 수장이다. 세계성공회의 정신적 지주인 캔터베리 대주교는 총리가 지명한다. 50대에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르완 윌리암스(56)는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등 매번 토니 블레이의 정책에 반대했다. 그런데도 총리가 그를 지명한 것은 교회와 정치가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전통 때문으로 관측됐다.

런던 관구 소속으로 대한성공회의 영국 대사 역을 담당하는 조황식 신부는 “성공회 신부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월급이 거의 같고, 사는 집에도 차등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안에서 국교로서 가장 강력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만, 성직자들은 스스로 기득권 없는 시스템을 선택한 셈이다. 특히 성공회는 타종교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어서 대성당엔 무슬림과 불교 지도자들을 자주 초청한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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