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머릿속에는 요즘 화두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문제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것은 통 관심이 없고 오직 이 문제만 신경이 쓰인다. 그 때문이겠지만 어젯밤에는 연속극을 보는데 귀에 번쩍 뛰는 대화가 있었다. 무슨 거냐 하면 주인공인 혜인이 아버지가 장기웅이라는 청년에게 '자네는 남을 도와주기를 그렇게 좋아 하나?'고 물으니 그 청년이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던 것이다.
"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일단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한 겁니다"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폭발사고현장에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구조에 매달리느라 옷가지가 엉망이 된 모습을 보고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이 되고 있는 '별난 여자 별난 남자'라는 드라마 속 이야기다.
내가 이 역지사지의 문제를 골돌히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어떤 광경을 목격한 뒤부터였다. 하루는 평소에 잘 다니지 않은 곳으로 산책을 하면서 마을을 지나니 웬 낯선 건물이 한 채 보이고 그 앞에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 현수막이 그 신축 건물주 측에서 내걸어 놓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읽어보노라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 주민은 절대로 농아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쓰여있고 그 밑에 '마을주민 일동'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그 건물은 알고보니 농아시설로서, 주민들이 입주를 반대하기 위해 내건 시위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짐작이 갔다. 농아시설을 혐오시설로 일단 간주를 하고 주민들이 거부반응을 나타낸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보니 그간 일련의 일들이 짐작이 되었다. 나는 근자에 이곳을 서너 번 지난적이 있는데, 그때는 다소 의아한 생각을 가졌을 뿐, 구체적인 일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빈터에 부지가 닦여지고 '다용도주택'이라는 푯말이 박혀있었다. 해서 누가 가게를 열기 위해 복합건물을 하나 짓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하루는 보니 젊은 사람 서너 명이 서성거리는데, 서로 마주보며 웃기는 하면서도 말은 않고 이따금 손동작을 하는 것이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날 마을 앞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마을을 버리는 거요. 절대 못하게 하야 돼"하는 게 아닌가. 하나 그때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건물에 관한 공론 모으기 였던 것이다. 다시말해 그들은 이미 용도를 밝히지 않고 짓는 그 건물이 무슨 시설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까마득이 몰라 뒤늦게서야 그것을 알고서, 청년들 또한 농아자이며 그 손짓이 수화인 것을 거니챘다.
한데, 마침내 건물이 완공되자 그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주민들이 들고 일어 난 것이다. 이 날 나는 목전에서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건물 앞은 여느 때와는 달리 사람 한사람 오가지 않아 휑한 전경이었는데, 유리창문 안쪽에는 겁먹은 눈동자들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으로 마치 탈북자들이 임시 보호소에 대기하면서 잔뜩 겁을 먹고 외부의 동태를 살피는 모습과도 흡사하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나는 그 눈동자들을 보자 그렇게 안쓰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스치느 생각은 그들은 자기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그러지 않아도 의기소침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자괴감에 빠져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제삼자의 입장이지만 꼭 이래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농아자들이 아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몰라도 그 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이런 시위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법구경(法句經)에 보면 이런 새태를 경계하는 대목이 나온다. '...거친 말을 하지 말라. 그 말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온다. 악(惡)도 화(禍)도 모두 오고가며 보복의 지팡이는 네 머리를 내리친다...' 즉, 사람은 입(口)으로 짓는 업(業)이 있는데, 이 구업(口業)의 악업(惡業)중에서도 제1 악구((惡口)가 험한 말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펼침막이야말로 악구 중 악구가 아니고 무엇인가. 생각하면 이곳에 터 잡고 사는 사람들도 괄시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서민들이기 때문에 이런 외곽지대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역지사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역지사자(易地思之), 얼마나 설득력이 강한 말인가. 이미 중국상고시대 에 맹자(盟子)가 했다는 이 말.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또 사전조차도 통일을 못해놓고 이 역지사지를 易之思之로도 쓰고 있는(표준 조선말 사전. 새 우리말 큰사전) 이 말.정말 입장을 바꿰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그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한 후부터 지금껏 이 화두에 묶이어 벗어나지 못하고서 머리에 가슴에 앙금처럼 맴도는 이 말을 되새기며 지내고 있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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