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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세월호· 차별금지법 등 세상 부름에 언제든 몸 내주셨죠”

등록 2023-07-27 17:46수정 2023-07-28 02:34

[가신이의 발자취] 통일운동가 김종수 목사를 기리며
10년 전 광주 5·18국립묘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6주기 추모 행사에서 고인이 설교하고 있다. 김경희 부목사 제공
10년 전 광주 5·18국립묘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6주기 추모 행사에서 고인이 설교하고 있다. 김경희 부목사 제공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지난달 28일 소천한 석천(錫川) 김종수 목포산돌교회 목사, 그의 묘비명에 새긴 성경 말씀이다. 향년 67, 아깝고 원통한 죽음이다.

목포로 내려온 지 11년7개월, 그토록 종횡무진하던 이 작은 도시를 영원히 떠난 그의 빈소에는 숨죽인 울음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조문객 중에는 그저 단 몇 번의 만남이 전부인 이들도 있었고, 40년 이상 기나긴 인연의 줄을 잡고 먼 길 단숨에 달려온 이들도 있었다. 또는 앞서 가버린 제자를 위해 힘겨운 걸음으로 애도의 마음을 전하신 80 노령의 스승들도 계셨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사해 부근에서’에 나오는 예수라는 사나이가 빌라도에게 하는 말처럼 그는 한번 그 인생을 스쳐가서 그를 잊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그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기 때문에.

고 김종수 목사.
고 김종수 목사.

고인은 1956년 4월 군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빛교회에서 전도사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한빛교회는 이해동 목사, 문익환 목사, 이우정 장로 등이 있던 교회였고 그들이 감옥에 가는 때이면 전도사인 그가 담임목회를 감당해야 했다. 그로부터 그의 목회인생 40년이 시작되었고, 그 마지막 12년은 이 땅의 가장 아래 끝 남도땅에서였다.

그가 목포로 내려올 때 그런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을, 그 사건들과 마주치게 될 줄은 그도 알지 못했다. 그는 평생 통일운동가로서 살아왔기에 우선 ‘목포 평화와 통일을 만드는 사람들’을 재건했고(2013),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로는 계속해서 ‘세월호 잊지않기 목포지역 공동실천회의 참가단체 대표’를 맡았다. 통일의 길 공동대표, 목포인권포럼 참가단체 대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목포지부 공동대표 및 자문위원 등도 맡았다. 동료, 후배 목회자들과 ‘성서학당’(2014)을 시작하였고, ‘전남기독교교회협의회’(2019)를 재건했다. 목포의 여러 시민단체와 운동단체는 늘 그의 이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이름만 내어준 적이 없다. 항상 그는 몸으로 그곳에 있었다.

목포 지방방송(엠비시, 한국방송) 뉴스에 시민단체 기자회견 장면이 종종 방영되었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증언한다. 머리 희끗한 사람이 늘 그 자리에, 그 모퉁이에 함께 있었다고. 그는 앞에 나서지 않았고, 언제나 뒤에서 그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가끔 그에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면, 그는 그 시간을 한 번도 함부로 마주하지 않았다. 항상 가슴에 담아둔 원고를 꺼내서 말하듯 원고를 읊어내렸다.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매번 20명 남짓 모이던 촛불집회가 한순간 폭발하듯 목포역을 가득 채웠던 날, 그 날도 그에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늘 하듯 준비해 간 원고를 가슴에서 꺼내다가 그는 그것을 도로 집어 넣었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설교가 아니라 선동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교회에서 설교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지만, 그의 말은 설교가 아니라 세상의 불의를 흔들고 어둠을 깨우는 예언자의 포효였다.

고인(왼쪽)은 시민사회의 차별금지법 제정 목소리에도 힘을 보탰다.
고인(왼쪽)은 시민사회의 차별금지법 제정 목소리에도 힘을 보탰다.

그를 추모하며 지나간 기록 속에 담긴 사진들을 골라내면서 본다. 흩어진 기억 속에 그가 함께한 사람들을 기억해 본다. 세월호 사건 9주기를 맞는 동안의 그 많은 날들, 9년 동안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그처럼 꾸준히 지켜낸 사람이 있을까? 세상이 말하기 전부터 그는 제주 4.3과 여순항쟁 등 잊혀진 역사의 발자취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그리고 광주 5·18을 기억하는 시간들과 뜨거운 8월이면 항상 나섰던 평화의 행진…. 그는 차별금지법, 지역의 환경문제, 버스파업, 삼호현대중공업 노동자 문제 등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부름 앞에 언제나 나섰다.

장례식 뒤 한동안 추모의 글과 기도와 발걸음이 이어졌다. 흔히 교회 밖의 일들에 이렇게 많은 힘을 쏟게 되면 소홀하기 마련인 교회와 교우 돌봄에도 부족함이 없었던 사람, 오히려 더 깊기만 했던 사람. 그래서 그 선한 목자의 사랑이 너무나 사무친다. 이제 그의 삶은 남은 자들의 숙제다. 그를 기억하는 방법, 그를 부활하게 하는 방법은 이제 그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뿐이다. 말씀을 그토록 사랑하더니 말씀이 된 사람이 여기 이 땅에 67년의 삶을 남기고 이제 근원으로 돌아갔다. 세상의 끄트머리에서 그의 샘(錫川)이 다시 솟아오를 것이다.

김경희/목포산돌교회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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