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전국 누비며 생태·농민·민족문제 나눠
전북 임실 빨치산 소탕작전 현장서 위령제
주민들과 함께 민족 화해 씨앗 뿌리길 기대
전북 임실 빨치산 소탕작전 현장서 위령제
주민들과 함께 민족 화해 씨앗 뿌리길 기대
[이사람] 생명평화 탁발순례 벌이는 도법 스님
“같은 눈빛을 지닌 형제인 우리 민족에게 좌익은 무엇이고 우익은 무엇입니까. 과연 누가 잘한 자이며 누가 잘못한 자입니까.”
지난 3일 전북 임실군 청운면 남산리에 위치한 옛 부흥광산 입구. 위령제를 지내던 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 도법 스님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산을 깊이 울렸다. 이데올로기의 허망함을 강조하는 스님의 목소리는 반세기 전인 1951년 3월14일 비극의 현장을 꾸짖는 듯하다. 당시 이 광산에서는 300~500명 가량이 떼죽음을 당했다. 빨치산 소탕작전을 벌이던 국군과 경찰이 폐광 안에 숨어 있는 공산당원과 빨치산 대원, 협력주민들을 없애기 위해 굴 입구에 3일 동안 고춧대와 생솔가지로 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연기를 피해 밖으로 뛰쳐나온 이들은 모두 사살됐고, 굴 속에 남아 있던 이들은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인근 마을 주민 홍광표(85)씨는 “희생자들 속에는 빨치산 활동을 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소탕작전으로 집이 불타 광산으로 피난을 떠난 마을 주민도 있었다”고 증언한다.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탁발순례’는 스님들의 수행 방식인 ‘탁발’을 지역과 민족의 차원으로 넓힌 것이다. 탁발순례단은 2004년 3월 전남지역 순례로 시작해 2년 남짓 동안 제주, 부산, 경남 등지의 마을을 누비며 생태·농민·민족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이 문제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자는 것이다. 순례단은 지난 3월말부터 전북지역을 돌던 중 임실군 청운면에 벌어진 ‘민족의 비극’ 증언을 듣고 위령제를 올리게 된 것이다.
도법 스님은 위령제의 의미를 “돌아가신 분들을 위령하는 것과 함께 살아 있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민족의 아픔을 자기 문제로 해야만 과거의 갈등을 전향적으로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날도 위령제에 앞서 스님은 임실군 여성농민회가 제공하는 점심을 들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 사정을 들었다. 또 학살 현장에 가까운 사조마을에서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한 농민의 400평 콩밭의 두둑을 만드는 일을 직접 도왔다. 스님은 마을 주민들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을 들은 뒤 오후 늦은 시각 부흥광산 입구에 도착했다.
도법 스님은 이렇게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함께 노동하고 함께 고민하며 진행하는 위령제가 “민족의 화해를 위한 씨앗을 뿌려놓는 것”이라고 밝힌다. 현충일과 6·25 등 민족의 아픔이 깊게 느껴지는 6월에 스님의 씨앗이 어떻게 싹틀지 기대된다.
임실/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임실/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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