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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통일조국에서 부모님 산소 가보고 싶었는데‥”

등록 2006-08-17 13:43수정 2006-08-17 13:52

타계한 강원용 목사.
타계한 강원용 목사.
“내 교회는 교회만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
실천적 종교인의 삶 살다간 강원용 목사
"내가 '예수쟁이'가 되니까 집안의 반대는 대단했어요. 특히 할머니는 '이제 내가 죽으면 제사도 못 받겠구나'하시며 매우 슬퍼하셨지요."

한국 교회 발전과 사회 민주화 운동을 위해 평생을 살다가 17일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여해(如海) 강원용(姜元龍) 목사. 통일 조국에서 북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성묘 한 번 가보고 싶다던 그의 '자그마한' 꿈은 이제 영원히 묻혔다.

함경남도 이원군 출신으로 14살 때인 1931년 기독교에 입교한 뒤 평생을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살아왔지만, '예수쟁이'가 된다는 것은 첫 걸음부터가 가시밭길이었다.

전통적으로 유교를 숭상하는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난 그는 기독교인이 되려고 집에서 여러 차례 쫓겨나야 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했다. 강 목사는 '내가 죽으면 제사도 못 받겠구나'하며 슬퍼하시던 할머니 모습을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1935년 농민들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며 소 판 돈 70원을 쥐고 떠난 간도 용정에서의 생활도 고통의 나날이었다.

당시 은진중학교에서 윤동주 시인, 문인환 목사 등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며 열심히 농촌계몽활동을 폈기도 했지만 생활고와 옥살이로 가족들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겨야했다.

설레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맞이한 8.15 해방. 그러나 강 목사의 앞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좌우 둘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압박하는 해방 정국 속에서 중용적 입장을 견지하며 김규식, 안재홍 그리고 여운형 등 중도파를 지지했지만 양극화의 소용돌이는 갈수록 거세질 뿐이었다.


현실 상황에 크게 실망한 뒤 하루 빨리 젊은 인재들을 결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젊은이들의 모임인 '선린형제단'를 조직했다. 오늘날 경동교회는 그렇게 창립된 것이다.

특히 50년대 중반의 미국 유학생활에서 뉴욕유니온신학대학의 스승 폴 틸리히과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와의 만남은 강 목사가 평생 간직해야 할 깨달음을 얻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양극의 대립과 갈등 지점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간 상호이해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는, 기독교 현실주의에 기초한 그의 신앙과 철학은 그렇게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1960년대 초반 미국에서 귀국한 강 목사의 활동은 그의 호 '여해'만큼이나 크고 눈부셨다. 활동은 종교, 정치, 사회, 언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행됐다.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의 산파역을 하며 총무와 이사장으로 일했고 1963년에는 '크리스챤 아카데미'(대화문화아카데미 전신)를 세워 종교 간 대화와 토론 문화 향상에 이바지했다. 1965년 이뤄진 '종교간 대화모임'은 6대 종교가 한자리에 모인, 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을 역임하며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국제적 지원과 협력을 요청하는 등 교회와 사회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의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과 세계 종교 사이의 교량 역할을 했다.

종교 간 대화에 기여한 공로로 그는 국제적 평화상인 니와노 평화상과 만해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70년 대 양극화와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운동으로 중간집단육성강화교육을 펼치고 김수환 추기경,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적극적인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전개했다.

문화예술분야에서도 방송윤리위원장, 방송위원장, 방송개혁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방송의 공정성과 자율성 확보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강 목사는 이 같은 헌신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정권 하에서 방송윤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 5, 6공 군사 정권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점 때문에 교회 안팎,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회색분자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인은 '성경은 배타성을 가르치지 않는다', '내 교회는 기독교인만 모인 장소(교회 안)가 아니라, 세상 전체', '기독교에는 성속(聖俗)을 분리하는 사고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자신의 행동이 시종일관 '여일(如一)'했음을 항변해왔다.

지난 2000년 남한의 국론통일과 주변 강대국들의 협력을 이끌어내 평화통일을 앞당기겠다는 취지로 사단법인 '평화포럼'을 발족시켜 지금까지 이끌어온 강 목사.

"내 나이를 고려할 때 통일된 조국에서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가고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는 것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할 것 같다"던 그의 평소 예견이 적중한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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