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화해 실천한 진보적 원로
남녀평등 강조 여성운동에도 기여
남녀평등 강조 여성운동에도 기여
"나는 독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대립하는 역사 속에서 양극을 넘어선 제3지대에 내가 설 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중간, 그것을 넘어서'(Between and Beyond) 살고자 했던 나는 항상 양극 사이에서 좁고 험한 길을 걸어왔다. 나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중간파, 때로는 회색분자 취급도 받았다. 그러나 어느 편은 절대 선이고 그 반대편은 절대 악이란 사고 방식은 옳지 않다고 보았기에 이를 해소하고자 1959년부터 크리스챤 아카데미 운동을 시작하면서 '대화'로 각 방면의 대립을 해소하고 화해의 길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17일 타계한 개신교의 대표적 지도자인 강원용 목사가 2003년 펴낸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한길사ㆍ전 5권)에 쓴 글이다. 종교 간 대화와 토론 문화 향상에 힘쓰고 사회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고인의 삶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엑소더스', '전쟁의 땅 혁명의 땅', 'Between and Beyond', '미완성의 민주화', '비스가 봉우리에서'라는 5개 소주제로 나눠 출간된 책에는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나의 현대사 체험'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듯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했던 고인의 삶이 나타나있다.
강 목사는 서문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조했다. "어느 종교를 가지고 있든 항상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신앙 속에는 알게 모르게 과오가 있고, 나와 대립되는 믿음을 갖고 있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다른 집단 속에서도 나의 편견만 버리면 이해할 수 있는 정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열린 사랑, 열린 사상, 열린 종교로 대화하고 협력해보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나는 비판과 박해까지 받았다."
향년 89세로 생을 마감한 그는 1993년 자서전 '빈들에서-나의 삶, 한국현대사의 소용돌이'(열린문화ㆍ전 3권)를 펴냈다.
"사람들이 내게 '당신은 누구요, 종교인이요?' 하고 물을때,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사회개혁가요?' '아니오' '그러면 정치가요?' '아니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나는 대답하기를 '나는 한국이란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요'라고 한다."
그는 책에서 한국이라는 빈 들에서 자신이 한 일은 유한한 판단력으로나마 가급적 정직하게 고발하고 증언하고 충고하고 위로, 격려하는 일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빈 들은 성서에도 나오듯 '돌로 떡을 만들라'는 물질만능, 경제제일주의, 악마에 절하고라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권력숭배사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기복종교(祈福宗敎)에 의해 지배되는 공간이었다."
함경남도 이원군 남송면 원평리에서 4대가 함께 사는 한국 농촌의 전형적 대가족 생활을 한 그는 어머니의 시집살이에 대해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억압 아래 고달픔과 고초의 연속이었다고 술회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그는 사회운동을 통해 국내 여성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강 목사의 팔순을 맞아 그와 인연을 맺은 각계 여성 지도자 39명이 1998년에 펴낸 '강원용과의 만남 그리고 여성운동'(여성신문사)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강 목사를 회고한 여성 지도자들은 강 목사가 여성도 남성과 평등한 위치에서 인간화되기를 바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 요소가 없는 보기 드문 남성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한국여성개발원장이었던 박인덕씨는 강 목사가 "여성이 해방되지 않으면 남성도 해방될 수 없다", "여자를 구속하는 것은 곧 남자를 구속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며 그가 남녀차별은 비인간적 발상에서 비롯된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남성이면서 어떤 진보적 여성보다 여성 해방적 관점을 가졌고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젊은 여성을 위한 중간집단 교육' 강연에 참가한 당당하고 멋진 페미니스트였다. 장래가 촉망되는 수많은 여성들이 한국 여성문제의 해결 방안을 이때 함께 논의했다.
강 목사는 1974년 기독교 장로교 총회에서 '여목사 제도' 통과에 결정적 도움을 줬다. 여자 목사를 제도화하는 것은 목사 자격에 '사람'이란 단어 속에 남자와 여자가 포함돼 있음을 재확인하기로 가결한다는 것이 당시 통과된 조문이었다.
그는 '빈들에서'의 맺는 말을 통해 자신의 죽음에 대해 미리 적었다.
"죽음이라는 불가지(不可知)의 세계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나는 지금까지 내가 그래왔듯 나날이 새롭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언제나 과거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사람이고자 했다. 나는 한국의 빈 들에서 악의 영과 싸우는 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는 몰라도 나는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죽음은 결코 인생의 끝이 아니다."
김정선 기자 jsk@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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