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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필진] 예수의 용기를 좇아, 채플 강요를 쫓아

등록 2006-12-22 17:53수정 2006-12-22 17:59

시 성탄절이 낀 세밑을 맞는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서 안식을 찾고, 어떤 이들은 집안이나 길거리에서 휴식과 유흥이 주는 행복을 누린다. 아이들이 선물을 고대하며 기도하는 모습, 수행하는 불자들이 기독교 길벗들에게 보내는 축하메세지…. 성탄절은 예수가 태어난 날을 온세상이 같은 생각, 같은 종교로 기리는 날이 아니라, 저마다의 표정과 각자의 몸짓으로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날이다. 이날이 있기까지, 비천한 이웃과 함께했던 예수 그리스도, 그를 따르는 제자들, 그리고 평화와 다원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기리며, 그들이 마련한 역사 위에 발딛고 서 있음을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그런 날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진정으로 다원주의적인가?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세속의 논리가 정녕 인정되는가? 필자를 비롯한 연세대학교의 몇몇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산 증거이다. 연세대학교는 '미션 스쿨'이라는 정체성을 이유로 채플을 모든 학생에게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연세대는 1주일당 1시간씩의 채플을 4학기동안 이수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졸업요건을 주지 않는다.

2005년 봄, 한 학생이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그가 채플이 열리는 학교 대강당 앞에서 한 학기 내내 한주도 거르지 않고 든 피켓에는 ‘채플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교훈이 폭력적으로 발휘되는 현실을 통렬하게 반박한 것이었다. 그의 행동은 전역 후 복학을 했던 필자의 수치심을 움직여 그와 뜻을 같이하기에 이르렀다. 그밖에도 양심적 결단에 따라 또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 채플을 거부하는 학생들, 마지못해 들었지만 비판하는 학생들이 있고, 우리는 ‘연세대 채플자율화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싸이클럽에 개설했다. 클럽의 분위기는 썰렁하고 다들 모여서 활동하기도 쉽지 않지만, 쑥스럽긴 해도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근대적 방침을 버젓이 고수하는 학교 당국 앞에서 부끄러움을 가질 틈은 별로 없었다.

학교 당국은 기독교 학교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채플은 ‘기독교의 이해’ 수업과 더불어 건학 이념을 뒷받치는 주축이라고 답변해 왔다. 그렇지만 의도로 보나 절차로 보나 명백한 종교의례인 채플이 어째서 교리를 이해하는 수준의 ‘기독교의 이해’와 같은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학생들을 억지로 채플 강당에 앉혀 기독교 정신을 전파할 수 있는지도 역시 이해하기가 힘들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채플에 입회한 학생들이 한국사회의 개신교인 비율보다 표나게 높지는 않을 것 같다. 교목이 설교할 때, 초빙연사가 연설할 때, 그 비기독교인들의 ‘졸업 때문에 할 수 없이 듣는다’고 체념하거나 ‘채플은 의례가 아닌 것 같은데?’라는 견해를 가진 채, 졸거나 딴짓을 하며 시간을 죽인다.

이 웃지 못할 동상이몽을 깨기 위해 ‘글로벌 시대’에 본받아야 할 대학들이 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는 20세기에 이르기 전 이미 채플을 자율화했다. 윤동주 시인이 유학했던 일본의 도시샤 대학교도 1960년대부터 같은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도 연세대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기독교 대학들이 굳이 채플을 전학생에게 강권할 권리가 있을까? 세계시민주의적 소양을 담은 기독교가 ‘한국은 다르다’는 민족주의적 핑계를 벗삼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행여 ‘학교의 자율성’이라는 슬로건 뒤에 숨을지도 모르겠으나, 타자의 억압에 빚진 자율성은 그 자체로 자율성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택해서 들어온 대학인데, 왜 방침을 따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럼 필자가 거꾸로 묻겠다. 처음부터 왜 기독교를 믿는 학생을 받지 않는다고 명토박지 않는가? 학생사회에서 불교, 가톨릭 등 종교동아리들이 활동 중임에도 왜 제지하지 않는가(못하는가)?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사고방식에서 어떻게 진리가 피어날 수 있겠으며, 종교가 다른 학생들을 위한 제도도 마련하지 못하는 미련함을 껴안고서 과연 자유를 맛볼 수 있겠는가.

1주일에 한번하는 수업 듣기 싫어서 투정부리는 것 아니다. 눈 질끈 감고 들어가면 그만인, 그래서 필자가 세 학기씩이나 패스했던 채플이다. 이따금은 강당 가득히 울리는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잠시 시름을 덜었던 기억도 있다. 필자는 ‘기독교의 이해’ 심화과정이나 사회봉사활동시간이 채플의 대체수업으로 주어진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묵묵부답이고, 이제 필자에게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말밖에 남지 않았다. 필자는 거룩함이 지나쳐 우스꽝스러운 이 쇼에 동참할 의사가 없다. 기독교인이었더라도 엎드려 받는 절은 사양했을 것이다.

채플을 몸소 보이콧하는 학생들의 힘은 미약하고, 저 교조와 침묵으로 뭉쳐진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종교사학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판례를 내린 바 있어 아직은 사법부가 다원주의와 종교 자유의 온전한 우군이 아니다. 남은 것은 입법에 의한 변화인데, 권력투쟁에 바쁜 선량들의 마음자리에 종교계의 수구파와 비민주적 사학재단에 맞설 용기가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변심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졸업장 따위에 양심과 자유를 팔아넘기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비켜갈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 채플을 보이콧하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예수가 가졌던 그 용기가 은총처럼 내리길 기원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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