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로 신학 하기’
구미정 교수 ‘한 글자로 신학 하기’ 펴내…
정, 물, 몸, 길, 신…. 모두 한 글자지만, 백마디 천마디 말로도 다할 수 없는 뜻을 지닌 단어들이다. 생태여성신학자 구미정 숭실대 겸임교수가 이 ‘한 글자’를 신학적으로 풀어냈다. 그가 2006년 한 해 동안 개신교계 대표적인 월간지인 〈기독교사상〉에 매달 한 차례씩 누에고치가 실을 풀어내듯이 토해낸 글이 〈한글자로 신학 하기〉(대한기독교서회 펴냄)로 나왔다.
이 글을 쓰면서 내내 ‘몸이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몸살에 시달렸다는 저자는 ‘몸의 신학’에서 “가족이 아프면 나 역시 편하게 밥을 넘기기 미안해지고, 이웃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내 살도 덩달아 떨려오고, 환경에 문제가 생기면 내 피부도 아토피로 반응하듯이 몸살을 앓는다는 것은 나의 몸이 다른 생명의 몸/살과 공명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라고 묻는다. 이화여대 철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해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은 먹물이라기보다는 인천 부개동의 달동네에서 공동묘지를 놀이터 삼아 사내아이들과 전쟁놀이와 귀신놀이를 하며 놀던 선머슴 같은 그의 영성훈련은 그런 몸살인지 모른다. 무생물인 한 글자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도 그런 아픔과 몸살이었을 것이다.
그는 ‘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서려야 설 줄이 없어 허공 위의 줄에 오른, 영화 〈왕의 남자〉의 장생과 공길의 줄에서 민중의 한을 위로하고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구원과 해방을 발견하고, 예수가 세상에 올 때 무력과 전쟁을 상징하는 군마의 밥통에 담겨 오신 뜻에서 제국과 폭력을 넘어서려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메시지를 본다. 저자는 ‘살의 신학’에서 “힘들더라도 화에, 한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일어나 춤을 추자”고 부추긴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다윗처럼 ‘힘차게’ 추지 말고, 예수처럼 ‘살살’ 추자고 한다. 그렇게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 흥겨운 신명에 젖을 때 비로소 신(神)이 나고, 하나님이 태어날 것이라고 한다.
열화와 같은 독자들의 연재연장 요청에도 꿈, 한, 똥, 멋, 맛, 술, 돈 등 수많은 한 글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뒷사람의 몫으로 남겼다. 마지막 글은 ‘비움’을 뜻하는 ‘공의 신학’이었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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