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상 신부
김병상 신부 ‘6월민주항쟁 20년 기념미사’
“공동체 파괴·불평등 심화”…제도권 민주주의 인사들 질타
“공동체 파괴·불평등 심화”…제도권 민주주의 인사들 질타
“우리네 민중을 시장의 지배에 맡겨두면서 공동체를 파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제도권 민주주의 인사들의 박제화된 정신은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것일까요?”
노사제는 20년 전을 감격해했고, 그 20년 뒤를 절망했다. 강론 한 마디 한 마디에 좌중은 점점 숙연해졌다. 5·18 광주 민중항쟁 27돌을 맞은 18일 저녁 7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87년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미사’자리에서 김병상(75) 몬시뇰(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고문)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제도권 민주주의 인사’들을 향해 “반도덕적 정권에 맞서 함께했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냐”며 매서운 메시지를 던졌다.
김 몬시뇰은 “독재정권에 맞서는 힘이었던 도덕적 정당성을 이제는 박물관에 전시하고 과시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전통은 도덕적 인간을 요구하고, 민주주의의 시작과 완성도 도덕적 정당성의 확보를 전제로 한다”며 “양극화와 가치 혼란, 이합집산의 정치적 혼돈은 성년식을 치르는 6월 항쟁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몬시뇰은 “아무도 앗아갈 수 없었던 가슴 벅찬 체험의 역사는 이제 어느 한 구석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며 시대정신을 상실한 당대에 “기억상실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같은 길로 나아갑시다’(필리피서 3장 16절)라는 성경 구절을 빌려 시작된 노사제의 강론은 “그래도 또다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미사가 끝난 뒤 만난 김 몬시뇰은 “민주 개혁세력이 자본주의의 퇴폐성에 물이 들어가는 느낌도 있다”며 “전체적으로 정체성을 잃어간다는 것이 아쉽다”고 강론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기념미사는 1987년 5월18일 명동성당 시국미사에서 고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는 성명을 발표한 사건을 기념해 열렸다. 당시 성명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으며, 그 뒤 명동성당 들머리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고 김승훈 신부, 함세웅 신부 등과 함께 정의구현사제단을 이끈 김 몬시뇰은 신망 높은 천주교 지도자로, 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를 비판하며 유신헌법 철폐와 언론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기도회를 열어 구속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왔다. 김남일 노현웅 기자 namfic@hani.co.kr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미사가 열린 18일 저녁 서울 명동성당에서 김병상 몬시뇰(가운데·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과 문정현(맨 오른쪽), 함세웅(맨 왼쪽) 신부가 서로 손을 맞잡고 찬송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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