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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블로그] 공동체로 사는 법

등록 2007-07-12 18:07

오늘 `산위의 마을'에서 녹취록 하나를 보내왔군요.

제가 얼마전 충북 단양 소백산에 있는 가톨릭공동체 `산위의 마을'에 취재를 갔는데, 오래 전부터 아는 박기호 신부님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치 못하고, 공동체에 대해 강연을 한 것을 그곳에서 전부 녹취를 해 보내주었어요. 박기호 신부님은 박노해 시인의 친형이기도 하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의장을 지낸 분으로 오랫동안 공동체 운동을 해온 훌륭한 사제이시지요. 저와는 가끔씩 만나 소주한 잔을 나누곤했는데, 이번에 그만 발목이 잡혀 몇마디 하게 됐습니다.

제가 세계공동체 순례기인 <세계 어디에도 내집이 있다>를 펴냈고, 많은 공동체 기사를 썼기에 공동체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진 분들이 저에게 자주 문의를 해오는데, 이 내용이 참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첫 가톨릭공동체 ‘산위의 마을’을 소개합니다

공동체의 날 강학회(2007.06.09)

세계 공동체의 이상과 현실, 그리고 비전


조연현 (《한겨레》종교전문 기자)

장소: 산위의 마을

참가: 산위의 마을 가족, 단기 입촌(가족, 길영주, 상계동분), 박현정, 채재영, 안성민, 그의 남편, 조상민, 홍효정, 한금실, 박현주, 이근백, 김은주, 김태희, 이상연, 류영진, 이기성, 레지나, 강현욱, 전승준, 박재란, 재란 친구

■인 사

여러분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많은 공동체를 다녀봤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도원, 사찰, 암자, 명상센터, 피정센터 이런 곳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경치 좋은 곳인데, 이곳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존경하는 박기호 신부님께서 여기 초대해주신 것도 이곳을 자랑하려고 저를 오라하지 않았나 할 정도입니다. 어찌 이런 곳을 36억 년(지구 나이)동안 숨겼다가 하느님이 예수살이공동체에게 보여주셨는가 신비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예전에 구인사 취재 오면서 한두 번 이쪽 길로 버스를 타고 휙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면 잠을 자기 때문에 바깥경치를 못 봤는데 정작 오면서 보니 바깥경치도 아름답고, 보발리 안쪽에 와보니 산속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는가. 이곳을 선택하신 분들 안목에 너무도 놀랍고 그분들의 기도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 잠깐이지만 아이들이 노는 것, 식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안에 들어갈 때도 신발을 가지런히(나가는 방향) 놓는데, 농사지으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들이 너무 잘사는 것 같아서 그런 모습을 보며 제가 별로 할 얘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화장실에 가서도 다른 곳의 화장실은 남자들이 (볼일을 볼 때) 물을 바깥으로 새도록 하니까 ‘남자는 물을 함부로 쏟아서는 안 됩니다,’ ‘한방울의 물도 흘려서는 안 됩니다’라고 붙여놓기도 하는데, 여기는 물도 흘리지 않게 해놓으셨더라구요. 공동체라는 것이 살다보면 그런 지혜가 정말 필요하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구태의연함을 벗어나는 공동체가 되어야

이상적 공동체는 ‘인위적으로 만든 공동체’보다도 ‘수천 년 동안 선조들의 지혜가 스며든 공동체’가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구태관습이 쌓여가면서 전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구태에 젖어서 조금만 변화가 되면 삶이 좋아지고 개선될 것도 전혀 개선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상황이 많았습니다.

처음 사람들이 우리나라 밖으로 나가고 돌아오고 한 게 100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서재필 박사가 19살에 미국으로 갔다가 50년 만에 고국에 다시 돌아와 한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도 고국을 떠나 있으면서 고국이 그립고 사무쳤겠죠. 시골마을에서 뛰놀고 하던 기억이 얼마나 새롭겠어요. 미국생활을 하다가 여기 다시 와보니까 “나라 잃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도 50년이나 지나도 이놈의 민족은 하나도 바뀌는 게 없어” 한탄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예전의 공동체가 아름답게 보이고 가슴으로 동경하면서도 하느님의 섭리로 보면 저주받은 것처럼 100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시련을 겪었잖아요. 전쟁으로 공동체 자체도 붕괴되고 한 마을에서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며 수천 년 동안 죽창으로 죽이고, 어떻게 보면 자그마한 공동체로 살았던 5천 년의 지혜를 축척하면서 인위적으로 발전․개선시키려는 노력들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공동체는 함께 살려는 삶의 자세

산위의 마을에 와서 쇄신하려고 노력하려는 모습, 한눈에 허투루 보지 않고 여기서 다 반영하는 것이 귀중하고 소중하구나 그렇게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만 봐도 오히려 베네딕도 수도회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봅니다. 수도자들만 모여서 하는 것은 쉽지만, 일반 신자들이 수도자와 어울려 산다는 것이 더 어렵고 가치 있으며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발 벗어 놓은 것을 보며, 처음 그렇게 밖으로 나가도록 신발을 벗었던 곳이 ‘광주 동광원’입니다. 이현필 선생님이라는 분이 여기처럼 학식 있는 분들이 아닌 고아들나 걸인들이 함께 살고 아이들 교육시키면서 “항시 들어올 때는 나갈 때를 생각하여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삶의 자세를 그런 식으로 가다듬고 가르치면서 광주 동광원이 생겼습니다. 세상의 논리로 보면 세속적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없지만, 동광원의 이현필 선생님을 보고 배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정신교육에 필요하겠구나 싶어 동광원에 계시던 분을 모셔 김준 교수를 초대 새마을 연수원장을 시키기도 하고, 임락경 목사님처럼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시골 교회에서 그런 운동을 한다거나 대안학교를 한다거나 중증장애인 시설을 한다던가. 세속적으로 성공을 했다는 그런 것을 떠나서 그런 활동들이 씨앗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위의 마을도 모르긴 모르지만 그 이상의 큰 밀알이 될 싹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사람이 몇 명이나 있고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까도 찬양을 들으면서 ‘부르더 호프’공동체에서 수백 명이 함께 부르고, 팃낙한 스님이 계신 ‘플럼 빌리지’ 공동체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어떤 성악가가 부르는 것보다 참 좋다 이런 느낌을 받았는데 여러분이 부를 때는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에도 ‘너희들 두셋이 있는 곳에 내가 함께 있겠다’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한 명 한 명으로 봤을 때는 너무 부족한 사람들(음치)이지만 함께 있으니 개인적인 흠이 보이지 않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줍니다.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

아까 소개 말씀을 들어보니 제 후배들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검정고시 출신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가출하고 떠돌아다녔던 반공동체적 인간인데 이렇게 잘사는 공동체에 와서 이야기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인간지사 새옹지마입니다.

땅에 넘어져본 사람들이 남이 넘어졌을 때 같이 일으켜 세울 수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공동체 안에서 고민하는 사람만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을 모색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공동체가 너무 아름답고 문제가 없어도 공동체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희 집에 와서 아내에게 ‘저렇게 훌륭한 남편하고 살아서 행복하겠다’고 하면, 아내가 그럽니다. “당신이 저 사람하고 살아봤어?”(웃음) 살아보기 전까지 알 수 없잖아요. 우리 둘이 얼마나 잘 싸우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을 수 없는 것이고 너무나 완벽한 모습이 우리 삶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하면서도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화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다운 모습이지 완벽 자체는 아닌 것 같아요.

■인도 이야기: 자유보다 인간

제가 4년 전에 회사를 1년 정도 쉬고 인도를 순례한 적이 있는데 인도는 ‘간디의 나라’고 현대로 보면 간디로부터 발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간디는 문제의식이 깨인 스무 살 이후에 혼자 살아온 일이 없이 공동체 안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저도 결혼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모든 것을 던져놓고 탈출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제가 굉장히 자유분방한 사람이거든요. 가정도 감옥 같을 때가 있고, 사람들에게서도 벗어나고 싶다. 혼자서 탈출해서 자유롭게 활보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남들은 다 참고 살지만 저는 참을성이 부족해서 인도를 1년 동안 다녀봤습니다.

인도를 다니며 크게 느낀 것은 가장 큰 자유를 얻었지만 정반대의 문제에 봉착했다는 사실입니다. 히말라야를 혼자 다녔는데 오지를 다닐 때 앞에 샹그릴라(Shangrila: 1933년 미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히말라야 동쪽의 지상낙원)가 펼쳐져 있는데 누구하고도 샹그릴라에 대해 얘기할 상대가 없어 고독해 외로움이 뼈에 사무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도라는 나라는 술을 사기가 어려워요. 한 도시에 알콜 주점이 한 두 군데 밖에 없습니다. 간혹 주점을 보면 한두 병 사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외로움을 달래며 마십니다. 술을 마시면 고국의 친구들과 가족이 그리워져 진짜 술이 더 필요한데 술은 없고 아침까지 달을 보며 외로움에 몸부림쳤습니다. 제일 미운 사람이라도 옆에 있어 주고 소주라도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왜 이렇게 간사한가. 그렇게 인간이 싫어 몸부림 쳤는데 자연도 천국도 다 소용없고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너무나 소중해 둘째로 놓기도 어려운 것이 ‘자유’지만, 자유보다 소중한 것이 인간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함께하지 않으니까 아무런 즐거움이 없습니다.

■공동체: 서로의 차이와 화해

제가 국내 공동체를 많이 다녔는데 아마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이겠죠. 같이 살아보면 인간들이 어쩌면 그리 다른지 생긴 것도 다르지 생각도 다르고 화를 내는 것도 다르지.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 다릅니다. 공동체적으로 잘 살아보자면 인간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죠.

국내 공동체 중에 제일 많이 가는 곳이 야마기시 공동체에요. 지난 번에도 식구들과 텃밭을 가꾸고 왔는데, 그곳엔 요즘 동물점 보는 게 유행입니다. 생년월일시를 가지고는 코끼리, 호랑이, 원숭이, 여러 가지 동물 특성을 5개로 구분해서 동물점을 칩니다.

저의 집사람은 호랑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집에만 가면 무서웠구나. (웃음)

동물점도 보고 사주도 보고 궁합도 보고 애니어그램도 보고 온갖 검사도 하고. 우리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보고 출발해야하는데 상대방도 나처럼 그럴 것이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상대가 자기와 같지 않으면 ‘자기 혼자 서론 본론 결론 다 내고 왜 안 그러느냐’며 자기 혼자 상대에 대해 혼자 예단을 하고 단죄를 합니다. 너무 다르다는 것을 명쾌하게 알아야 합니다. 사람 중에 같은 사람이 없는데 공동체에서 같이 살다보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상대에 대한 환상은 빨리 깨는 게 좋습니다. 저 인간이 나와 얼마나 다르다는 걸 빨리 알아야 합니다. 너는 그렇구나. 너는 그래서 그렇구나. 막연한 환상 속에 살다가는 환상 속에서 갑니다. 차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공동체가 중간에 실패하는 이유는 2가지입니다. 불화와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공동체의 초심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잘해나가는 공동체는 그들만의 어떤 살아가는 비법들이 있습니다.

부르더 호프 공동체는 경제적으로는 어린이들의 목제 장난감을 만들기 때문에 생태적 장난감을 만들면서 유럽에서 소문이 나서 정당한 가격도 받고 생계를 해결합니다. 그분들이 공동체에 살 때는 검소하게 살고 보통사람들이 사는 생활비의 1/5, 1/10로 살아갑니다. 먹고사는 데 많이 드는 건 아니잖아요. 자급자족이 많이 되었으니까. 먹고사는 문제는 많이 해결이 되었으니 공동체의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을 화해시키느냐입니다.

부르더 호프 공동체에는 핵심적인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상대방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뒤에 가서 험담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부르더 호프의 핵심적인 소통방법입니다. 솔직하게 당사자 앞에서 얘기를 하는 거기까지 가는 데도 공동체의 성숙도가 필요합니다. 공동체 전체적으로 그런 것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사람들 중에는 약간의 조언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 있거든요. 그런데 공동체로 살아갈 때 관계가 깨지는 첫번째가 ‘불신’인데 그런 조언이 가져오는 불신보다 뒤에서 험담을 한다고 느꼈을 때의 불신이 훨씬 큽니다. 험담하는 것은 말이 아니어도 느껴집니다. 사람의 얼굴과 공기, 말 이전에 기운으로 전달이 되고 알게 모르게 불신의 기운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절대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부르더 호프가 수십 년간 공동체를 유지해온 비결은 이런 기준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간디 이야기

인도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간디라는 분은 19살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괜찮은 가문에서 태어나 영국까지 유학을 갔지만 정작 자신의 나라인 인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예루살렘과 성경의 역사’는 잘 알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나 문화는 잘 모른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간디의 영국 유학 시절 그곳엔 이미 자연주의자도 있었고, 채식주의자도 생기고 그런 분들이 동양의 영성에도 새로이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간디가 인도에서 왔다고 하니까 인도에 대해 물어보는데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정신, 문화를 전혀 몰랐단 말이죠. 그러면서 그분 나름대로 자기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을 통해서 조금씩 발견하고 같이 어울려 공부를 했답니다. 톨스토이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그때 당시 톨스토이는 유명인사였음에도 편지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이분이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변호사로 갔는데 이미 남아프리카엔 인도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같은 영국 식민지이기 때문에 인도의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로 남아프리카로도 갔던 것이죠. 그분들의 인권 변호를 위해 일을 하다가 거기서 톨스토이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자 평화주이자이죠. 지금도 유럽에서는 모든 문학인들의 가장 존경하고 영향력 받은 사람의 항시 일번이 톨스토이입니다.

간디는 성경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도 하고 톨스토이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다가 인도로 건너와서 ‘인도다운 것’에 대해 연구를 하며 “인도를 살리는 것은 인도의 방식으로 살려야 되겠구나. 영국의 방식이나 소련의 방식이 아니고 인도가 수천 년 동안 축적한 인도의 지혜, 인도의 문화적 토향, 인도의 특성으로 바꿔나가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갔는데, 산위의 마을도 역시 한국다운 예수살이공동체이기 때문에 (벽의) 그림부터 다르잖아요. 고쟁이 입으신 예수님, 한복 입으신 성모마리아. 간디도 인도가 정말 바뀌어야 할 것들은 바꿔가면서 의식개선과 비폭력적 인도정신을 중요시 했습니다. 어머니가 자이나교에 심취하신 분인데, 자이나교는 비폭력 적이죠. 미물 하나도 죽이지 않으려 육환장을 짚고 다니면서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말이죠.

일체 어떠한 경우도 살생을 허용하지 않는 비폭력의 ‘아힘사(Ahimsā)’정신을 인도의 정신으로 매김하면서 인도의 문제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동체를 살리는 것이 인도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꿈꾸는 것이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떤 서원을 가지고 뭉쳐 있는 거잖아요. 현대 물질주의, 욕망주의, 갈등주의 이런 것을 딛고 일어서는, 예수살이처럼 현재 부조리한 현실에서 꿈을 이루어 보려는 사람들의 공동체란 말입니다. 잘사는 것이 혼자서 잘사는 것이 아니라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간디 이야기: 스스로의 힘

간디는 영국이 인도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망하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사적으로 영국군대가 물러가고 인도가 독립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군사적으로 외세가 물러나도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 민족끼리 싸우고 더 큰 피를 흘리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독립 그 자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 것을 우리 민족도 잘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내 자신이 바뀌고 우리 마을이 바뀌어야 한다. 정말 훌륭한 마을이 건설되는 것이 먼저고, 인도가 군사적으로 독립되는 것은 부차적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얘기하면 우익 같은 사람들한테 비판받고 총 맞을 짓이죠. 그렇지만 인도에서 간디가 본 것이 정확했다는 거에요. 스스로 개인과 마을이 바뀌지 않았으니 영국이 물러갔음에도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싸우고 있습니까? 지금 파키스탄과 얼마나 많이 싸웁니까? 카슈미르 지역은 또 어떻습니까?

간디의 문제의식이 중요한 거죠. 간디는 한마을 한마을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공동체운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간디의 영향으로 잘 되고 있는 공동체가 스리랑카에 있습니다. 간디의 수제자였던 비노바 바베의 제자인 아리야라뜨네(A. T. Ariyaratne) 박사가 하고 있는데요. 5~6년 전에 저도 보름 정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사르보다야(Sarvodaya) 운동’이라고 마을이 모든 이의 깨달음이라는 거죠.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자신이 깨닫고 내가 변화하고 우리 마을이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사르보다야 운동을 스리랑카에서 하면서 스리랑카의 절반 이상의 마을에서 공동체운동으로 함께 삽니다. 스리랑카는 그 공동체운동으로 정말 많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경상도만한 섬나라에 불교도인 신날리족과 이슬람인 타밀라우족, 그리스도인이 조금 섞여 서로 죽이고 죽이는 내전을 수십 년째 했는데, 우리나라 남북한과 다르게 회귀하기 어려운 복잡한 나라입니다. 민족도 다르지 언어도 다르지 종교도 다르지 문화도 다르지 같은 게 없으니까요. 그런 스리랑카에서 내전이 거의 종식되고 그러면서 한마을이 변화되는 운동을 하는 거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고, 산위의 마을처럼 훌륭한 마을들이 있으면 그런 마을이 스리랑카를 변화시키는 등대가 되는 것입니다. 잘 되는 마을들이 몇 개 있고 그 마을들이 운동에 동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에 일 분씩 평화명상을 같은 시간에 하자, 우리 스리랑카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 명상을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또한 일 년에 몇 차례는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 것을 다 내려놓고 흰 옷을 입고 한 자리에 모이자 해서 수십 만 명씩 같이 모여서 흰 옷을 입은 채 가만히 앉아있는 거에요. 침묵의 평화명상을 하면서 평화를 생각하자는 것이죠.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같은 옷을 입고 침묵 속에 있을 때 뭐가 다르냐며 하나 되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서원(공유가치)의 중요성

간디가 추구했던 것도 이처럼 이상을 가진 공동체지만 유럽 같은 곳을 보면 이상 없이 모이는 공동체도 꽤 있습니다. 덴마크나 네덜란드가 공동체운동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데, 그렇게 잘살고 보험혜택도 잘 받다 보니 모든 것이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개개인은 너무 외롭습니다. 서구화라는 것이 개인주의로 개인의 자유쪽으로 향해 일관되게 뻗어나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쪽을 지향했던 사람들이 다시 반대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미 자유는 얻어 놓았고 외로움도 달래 주라, 그래서 찾은 것이 공동체운동인데 개인적 소망을 통해서 모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신문광고를 내서 우리와 함께 살 사람 50명, 200명!! 2~3년 딱 해봅시다! 하면서 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들이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는 어떤 자기들의 공통의 꿈이랄까 이상이랄까 서원이랄까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이란 말을 제 나름대로 ‘생각 사(思), 요람할 때 람(籃)’자라고 생각해봤습니다. 그 언어 속에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의 요람이 아닐까, 사람이 다른 건 얼굴도 다르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살이나 뼈의 껍데기 속 다른 생각을 싣고 다니는 요람인데 생각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동물들은 물질적인 먹고사는 욕구가 가장 중요하지만 사람은 조금 다르잖아요. 자기는 배부르면서 남이 먹을 것까지 뺏어서 저장하기도, 또 자기는 배고파 죽어가면서도 자기 먹을 것을 남에게 주기도 하고, 인간이라는 것이 동물하고 다른 차원의 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각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그런 서원들이 정말 필요합니다. 공동체라는 것이 차이나 개인적 아쉬움이랄까, 개인적 상처도 이상과 꿈 앞에서, 천국을 이 땅에 이뤄보겠다는 이상 앞에서 자기가 조금 아파도 내려놓을 수 있고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모여야 하는지 간디에게도 그런 공동체에 대한 모티브가 있었습니다. 자기 아픔이나 자기 것이 작아져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면 자기 것만 너무 내세우게 되고 자기 아픈 것만 드러내서 참으로 함께하기 어렵잖아요.

■역사 안에서 우리나라 공동체들

우리나라에서도 예수살이공동체와 간디에 앞선 공동체운동들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향학, 두레, 대동단결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뭐든지 오래되고 낡게 되면 그렇듯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끌어가는 유불선이라는 전통사상도 참 훌륭하고 좋긴 하지만 구태연하게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습니다. 유교도 공자인문사상을 조선후기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불교도 부처님이 모든 인간에게 불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평등주의를 이끌고 나왔는데 고승이니 왕사니 하시는 분들은 임금하고나 놀고 민초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오래됨으로 인해 구태의연성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자기 편한 데에 빠져버리면서 사람들을 일신시킬 수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시대에 혹독한 고통을 받았잖습니까? 지금은 워낙 안 좋은 부분이 극대화된 경우가 많지만, 분명 그 사이 개신교가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예전부터 개신교가 개벽역할, 사상역할을 했는데 자체 종교로 봐서는 가톨릭이 순교도 많이 하고 영성이나 순교성이 대단했지만, 민족적 차원으로 봐서는 개신교가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명동촌

초기 공동체로 간도에 명동촌이 있습니다. 명동촌공동체는 1890년대 함경도 분들이 간도로 이주해서 쓰러져가는 민족을 세우기 위해서 학교도 세우고 자기 마을공동체를 세우고 교회도 세우면서 명동촌을 이끌어 왔습니다. 윤동주가 태어나고 배웠던 곳이 그곳입니다. 그분의 삼촌이 김약전 선생님인데 간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타고난 지도자셨고 거기에서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강원용, 김재준 등 현대사를 이끌어간 인물들이 작은 마을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큰마을에서 인물들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현대사는 많은 사람이 바꾸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은 산위의 마을이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명동촌도 함경도에서 다섯가족이 마을을 만들었어요. 지금 여러분은 처음부터 너무나 훌륭한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나라 잃은 사람들이 황무지에 가서 개간을 하고 일본, 소련, 중국에 쫓겨가면서 민족을 살려보겠다는 이상을 갖고 운동을 한 것입니다.

■오산학교(용동촌)

공동체운동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곳이 오산학교입니다. 용동촌이라고 민족대표 33인 중에 하나인 이승훈 선생이 중심이 되어 만든 곳입니다. 남강 이승훈 같은 분은 반상의 구별이 있던 그 시절 쌍놈이었죠. 어려서 부모도 잃고 남의 일을 성실하게 해주며 부자가 되었는데 의식이 깨어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09년인가 1910년에 평안을 지나가다가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들었다고 합니다. 안창호 선생님은 간디보다 훨씬 먼저 자기 민족의 문제의식을 꿰뚫어 보신 분입니다. 안창호 선생의 어떤 말씀이 이승훈 선생의 마음속에 팍 꽂혀 생각이 돌게 되었느냐? “일본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가 우리 스스로 망하게 한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존귀해지지 않는데 누가 우리를 존귀하게 여길 수 있느냐? 우리가 스스로 존귀해지려면 우리 스스로 교육이 되고 의식이 바뀌고 의식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인도에 간디가 있었다면 그보다 10여 년 전에 안창호 선생 같은 문제의식을 이미 꿰뚫어 보셨던 선각자가 이미 우리나라에 존재했습니다.

3․1운동 같은 경우도 인도 땅에 비폭력이란 단어가 널리 퍼지기도 전에 이미 우리나라는 한두 명이 한 게 아니라 전 국민이 비폭력운동에 참여했잖아요. 그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분이 바로 남강 이승훈 선생입니다. 평양의 길선주 목사 등 대표적인 개신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여서 운동을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고 토로하자 남강 이승훈 선생이 “지금 우리 동포들은 모두 지옥에 가는데 당신들만 천당에 갈 생각이냐, 나는 그런 천당은 가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그분들을 크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때 당시는 현실 자체가 정말 지옥이었고 그곳으로 내몰리는 동포들의 상황을 모인 사람들에게 일깨우면서 기독교 인사들을 3․1운동에 참여시켰죠. 그렇게 해서 독립선언문을 외친 33인의 민족대표에 개신교 인사가 16명이나 포함되었습니다. 그런데 33인 중에 우리 가톨릭 신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가톨릭이 민족공동체 의식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때는 우리 스스로 가톨릭을 이끌어간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주도했었던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반성하고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보다 민족이 우위라는 것이 아니라 도탄에 빠진 이 땅에 우리가 함께 살면서 이런 지옥과 같은 상황을 공동체로서 얼마나 의식하고 함께 공감하고 있는지를 얘기하는 겁니다. 민족을 위해서 종교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의식, 그런 점에서 그동안 가톨릭이 미진한 부분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공동체: 작지만 큰 밀알

개신교 교회공동체, 예전에 명동촌이나 용동촌에 세웠던 오산학교에서 이승훈을 비롯한 조만식, 유영모, 신채호, 함석헌, 이중섭이나 김소월 같은 보배로운 사람들이 모두 거기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산위의 마을에서도 앞으로 신앙을 가진 훌륭한 인재들이 틀림없이 나올 것이듯이 그 조그만 곳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것, 그러니까 뜻이 생각이 사람한테 얼마나 중요하냔 말이죠. 그때 당시에 용동촌 같은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에서 그런 인물들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남강 이승훈 선생의 증손자가 바로 홍성에 풀무농업학교를 세운 이찬갑 선생입니다. 어떤 이상향이 미완으로 그치고 그곳이 결국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밀알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 밀알이 바로 풀무농업학교로 이어졌고 유기농 농업과 공동체운동으로서 홍성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곳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찬갑 선생은 농업의 소중함, 땅과 함께 하는 소중함의 진리를 일찌감치 깨우친 분으로 그분의 영향을 받아 홍순명 풀무농업학교 교장선생님이 운동의 뒤를 이어 나갔고 그 학교에서 배출한 학생들이 사회적 기반을 잡아가면서 홍성이라는 곳이 이제는 우리나라 유기농의 메카로 자리를 잡아가게 된 것입니다.

먹는 문제에서도 이건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사실 먹는 것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유기농 같은 농업운동에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람들 의식이 너무나 부족하다 보니 홍성지역 유기농 농사규모가 올해는 오히려 줄었어요. 이런 것들을 공동체정신으로서 우리 산위의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의식할 수 있도록 많이 깨워야 하고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공동체운동이라는 불모의 개척지가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서원을 가지고 여러분 개인이 살아가는, 자기 스스로부터 삶의 조건들―먹고사는 것, 짓고 사는 것, 생각하고 사는 것―을 바꿔나가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변화되는 과정들이 산 위의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이제는 홍성의 그런 모습들을 이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의 경우도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잠자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재필 박사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 나라 이 민족은 50년 전이나 50년 후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기도 하셨는데, 불교가 그렇게 훌륭한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깨어 있지 못하고 사람들과 같이 생태적인 모습들을 잘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절에서 자신들이 가진 이상적 진리를 상생의 공동체적 삶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잘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사 같은 몇몇 불교공동체들이 있어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개신교에서는 용동촌에서의 이상이 홍성으로 이어졌고, 불교에서도 마찬가지고 가톨릭에서 이제 산위의 마을이 혜성처럼 등장을 한 것입니다.

■공동체: 길은 나의 마음속에

성인이 날 때는 한 시대에 한 명만, 천 명에 한 명씩 나타나는 게 아니고, 동시대에 한꺼번에 나타나 서로의 의식을 깨워주고 도움을 주고 받는다고 합니다. 2천 5백 년 전에 석가, 노자, 장자, 소크라테스가 한꺼번에 태어나고 예수님과 더불어 수많은 성자들이 같이 동시대에 일어나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가톨릭에서도 깨어나고 불교에서도 나오고 개신교에서도 하고 원불교에서도 그렇게 공동체로 삶을 가꾸어가는 것입니다. 소공동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같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공동체 비전을 말씀하셨는데 공동체는 제가 보기에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저도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수도라면 수도고 수행도 하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보면서 공동체 마을도 보고 사람도 보고 ‘사람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 똥 빼는 재주 있어?’ 이렇게 생각이 들지만―예수님이 있고 부처님이 있고 훌륭한 선각자가 있고 그런 분들을 보고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산위의 마을도 있고요. 다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가 이 공동체가 잘 될 것 같느냐 못 될 것 같느냐 자꾸 물어보고 그러니까 어떤 선사가 그랬답니다. 옛날에 점을 너무 잘 치는 점쟁이가 있었는데 선사가 점쟁이의 문턱에 서서 ‘내가 안으로 들어갈 것 같으냐 밖으로 나올 것 같으냐’ 물어보니 점쟁이가 대답을 할 수가 있나요? 그 점쟁이가 안으로 들어갈 것 같다 하면 선사는 밖으로 나갈 것이고 밖으로 나갈 것 같다 하면 들어올 것인데. 결국은 인간의 마음이 결정하는 것 아닙니까? 결국 사람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고. 또 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곳이 없으니까요.

인도 속담에 “길은 사람이 만들지만 길을 만들어 놓으면 길이 사람을 만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산위의 마을에서 느꼈던 서원을 심어놓고 우리가 모이고 꿈을 꾸고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여러분을 만들어 줄 것이고, 이곳이 굉장히 신비로운 곳이고 좋은 힘이 모이는 것인데 착 보아도 풍수지리로 봐서 최고의 자리인 것 같습니다. 이곳이 여러분들을 잘 만들어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은 여러분들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처음부터 완벽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이미 현실 속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고 이미 둥둥 떠다니는 사람이고 허상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같이 살면 싸움도 있고 갈등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가꾸어 보려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항상 문제라는 것이 있고 문제를 회피해버리지 않고 문제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지도자고 영웅이지 문제를 회피해 버리려고 하는 사람은 히틀러 같은 사람입니다. 갈등의 씨앗 자체를 없애고 상대방을 없애면 갈등이 없어질 것 같지만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배동교육을 받으면서 마음이 감미로웠는데 여러분들이 꿈꾸는 예수살이로서의 그 아름다운 서원이 여러분들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조화(調和)를 주기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의 응답

■김석은

다른 공동체를 방문하셨을 때 어떤 문제점들을 발견했습니까?

부르더 호프 공동체에 한국에도 일 년 가까이 살던 바우만 부부가 있는데 부르더 호프에서도 제일 열심히 성실히 살던 부부입니다. 얼마 전 연락을 해보니 아들 문제로 잠시 공동체를 나왔다고 합니다. 공동체는 여러 명이 함께 살기 때문에 상처를 용해시키는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동물끼리도 보면 원숭이와 개는 둘이 사악해서가 아니고 만나면 싸우게 됩니다. 좋은 원숭이와 좋은 개가 만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도 살다보면 성격적으로 부딪히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나와 싸운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부르더 호프 공동체 안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살아도 바우만 부부의 아이처럼 그런 아이들도 있기 마련이죠.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부모도 공동체만을 고집부리지 않고 그 자식을 위해 공동체 밖에서도 살아보고 자식이 변화되면 다시 공동체로 들어가고 하면서 나름대로 고뇌하고 삽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공동체고 특히 아름다운 분들이지만 그런 개인적 고뇌도 있었습니다.

■조상민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과 살면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다녀보신 공동체들 중에 남 험담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직접 얘기하는 부르더 호프의 예처럼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론이 있다면 좀 더 소개해주십시오.

퀘이커 공동체 같은 경우, 경청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부모님께 시간을 보시하는 셈치고 4박5일만 부모님께 귀 귀울여 들어봐라. 평생 응어리진 것이 다 풀어지실 겁니다. 부모님의 평생 쌓인 한도 다 정신병입니다. 내적 화병이 다 녹을 것이다.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러죠. 부모가 몇 마디하면 ‘됐어. 또 그소리!!.’ (웃음). 4박5일만 참고 들어주세요. 상당한 인내가 요청되지만 그 사람은 해소되지 않는 뭔가 있어서 녹음기 레코드판 돌듯이 한 말 또 하고 하는데 그 말을 제대로 경청하면 그 사람의 쌓인 것이 녹는 순간 상처가 해소될 겁니다. 퀘이커 공동체는 남을 말을 들어주는 ‘경청’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티벳에 갔을 때도 불교의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라는데 문수보살상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습니다. 문수보살상은 손을 귀에 대고 상대방에게 몸을 기울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혜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남의 말을 듣는 것도 자기 스스로의 성숙이 필요하고 품어줄 수 있는 아량과 포용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강현욱(원불교 신자)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성에 많은 관심을 갖는데, 개개인의 영성을 키우고 깨달음으로 가고자 하는 수행의 방법이 공동체의 특성에 따라 있을 것 같은데요.

간디공동체도 수행을 중시하는데 기도의 방식은 다양합니다. 지금은 간디의 생생한 정신, 생동감은 많이 사라진 느낌이지만 간디의 삶의 방식인 ‘실천’을 여전히 중요시합니다.

간디의 삶에서 감명 깊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간디의 수제자 비노바 바베는 탁월한 지식인이며 학자였습니다. 그분은 이십 몇 개 국어를 해서 모든 종교의 경전은 원어로 봤다고 합니다. 노자, 장자는 한자로 보고, 코란은 아랍어로 보고,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은 페르시아어로 보는 식입니다. 이분이 경전해석에도 탁월해서『바가바드 기타』라는 힌두교의 대표적인 경전을 이미 20대 초에 가르쳤습니다. 이때 간디는 비노바 바베보다 20살이나 많았지만 그의 강의를 들었답니다. 그런데 꾸준히 강의를 듣던 간디가 어느 날부터 안들어 오는 것입니다. 한 달남짓 지났을 때 비노바 바베가 의문스러워 간디를 찾아갔답니다. 이유를 들은즉 마지막 들었던 강의가 자기의 육신적 욕구를 넘어서는 대목인데, 자기가 직접 시험해보고 그것이 안 되니까 자신이 직접 할 수 있을 때까지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간디는 스스로의 실천을 상당히 중시했습니다. 그렇게 삶 속에서 실천을 중시했던 간디이기에 유언처럼 후세에게 남길 메시지가 있냐고 물었을 때 “내 삶이 메시지다”라고 말했답니다. 간디가 완벽한 삶이 아니고 고뇌하는 중에 완덕을 추구하고 간디의 공동체에서도 싸움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가보니까 간디 아쉬람보다도 비노바 바베 아쉬람이 훨씬 더 문제가 되고 있더라구요. 거기에는 수녀님들처럼 시스터가 30~40명이 있는데, 그분들 나름대로 실천적 영성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수도나 수행이란 것도 ‘수행, 수도 이데올로기’에 빠져버리면 곤란해집니다.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고 현실과 유리되면 내 삶과 상관없는 다른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노바 바베 아쉬람은 제가 갔던 아쉬람 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인도의 다른 수행공동체를 많이 다녀봤습니다만 오래된 요가공동체를 가보면 굉장히 깊은 영성으로 외관상으로도 세속이 아닌 하늘에 사는 사람들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간혹 그런 분들이 전혀 현실감각도 없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대체능력도 없고,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해주기 어려운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불교에서도 선정뿐만 아니라 지혜도 동시에 갖추어야한다는 것이 굉장히 강조되기도 했습니다. 비노바 바베 아쉬람에 가보면 이분들이 상당히 깊은 영성이 있으면서도 현실적 문제, 인도가 가진 문제, 이 세상 고통의 문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하는지, 이런 물질적 욕망에 대해 어떤 삶을 갖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굉장히 깨어있었습니다. 이 점에 상당히 놀랬습니다. 나이드신 분들인데도 깊이 알고 계시더라구요. 수행․수도를 하면서 현실과 삶속에 스며들면서 같이 가는 이런 수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영기

아이들의 교육문제인데요. 1. 애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여기(공동체)에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한 부모들의 걱정이 있습니다. 2. 청년들이 가지는 가능성, 욕망과 가능성은 다르지만 비슷하다고 보는데, 청년들이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도 많아지는 만큼 집중은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공동체가 어떤 방법으로 설득하고 얘기해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열심히 하는 청년이 있는데 관심이 여러 가지에요 너무 많은 거에요. 가능성이 많은 거죠. 여행도 가고 싶고 예술도 하고 싶고 공동체도 하고 싶고 나쁜 것은 아니거든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산위의 마을에 와서 일 년 쉬기도 하고 학교에 나가기도 하지만 이 아이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부모로서는 아이를 공동체에 잡아두는 게 옳은 건지 아니면 아이의 다른 가능성을 위해 다른 것을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다른 공동체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다른 공동체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의 날개를 꺾으라고 할지 그냥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할지 정리를 못하는 상황입니다.

1. 그렇게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자기의 아이는 물론이고 청소년들이 입회할 때도 본인들이 그런 고뇌도 없다면 거짓말일텐데. 사람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삶은 선택과 집중인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은 포기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가톨릭에서는 순명이 큰 덕목이기 때문에 순명하면서 어차피 하나의 삶을 선택한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하나를 포기하게 됩니다. 세상을 사는 것은 어차피 선택의 문제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꿈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무진장 많지만 선택하지 않으면 하나도 결실을 거둘 수 없잖아요. 가장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그 공동체적 삶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다면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야마기시 같은 경우는 공동체에서 특출한 아이에 대해 배려할 수 없으니까 나가게 되는 경우를 보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공동체 살면서 지극히 만족스러워하고 아이들도 그런 공동체적 삶을 살아주기를 바라더라고요.

부르더 호프 공동체도 애들이 성인이 되면 의무적으로 내보내잖아요. 나가서 자발적 선택으로 들어오라고 하죠. 70~80%는 다시 공동체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밖에 나가서 살아봐도 돌아보면 공동체만큼 행복한 삶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공동체로 사는 분들도 자기보다 자기 자식들의 앞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들 아닙니까? 제가 봤을 경우에는 자기 자식들이 대부분 다 공동체에서 살아주길 희망했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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