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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블로그] 종교전문기자가 본 한국 기독교 (2)

등록 2007-07-13 16:21수정 2007-07-13 16:30

며칠 전 기독교윤리실천이 주최한 세미나에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내용을 기독교계 신문인 뉴스앤조이 등에서 크게 다뤘더군요.

아마도 기독교 내부에서 본게 아니라 밖에서, 그것도 종교전문기자가 한국 기독교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가 관심이 된 듯 합니다.

올해는 평양대부흥 100돌의 해이고, 지난 일요일에도 상암경기장에서 무려 10만명이 모여 대규모 행사를 했지요.

남의 잔치에 재를 뿌릴만큼 모질지 못하기에 행사 전에 별로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않았지만, 저는 그런 류의 관점과 행사에 별로 찬동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이 나라 선각자들이 어떤 고뇌 속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어떤 신앙 생활을 했고, 이 민족 이 동포를 위해 어떤 기독교를 가꾸고자 했는지를 성찰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발표한 강연이 너무 길어서 두번으로 나누어 싣도록 하겠습니다. /조연현 기자

개신교는 왜 신뢰받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하게 되었는가

지난해 실시한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 지난 10년간 신자수가 가톨릭이 74.4%, 불교가 3.9%씩 증가한데 반해 개신교는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데 대해 큰 충격을 겪었던 개신교가 이런 추이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해보기 위한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목회사회학연구소와 일상과초월이 주최한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톨릭 성장’이란 제목의 세미나였다.


이 세미나에서 인천가톨릭대 명예교수인 오경환 신부는 사람들이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호감’을 들었다. 사람들은 일상 생활 중에 관찰하면서 각 종교에 호감이나 반감을 갖게 되고, 아무리 열심히 선교해도 결국 호감을 갖는 사람만이 입교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가톨릭에 호감을 갖는 이유로 가톨릭 성직자들의 △청렴성 △정의와 인권활동 △조상제사와 장례 예식에 대한 유연한 태도 △타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 등을 들었다. 성당에선 신자들의 개인 헌금액은 절대로 공개하지 않아 헌금을 두고 경쟁을 시키거나 압박하지 않고, 성당의 수입 지출에 대해선 모두 공개하며, 신부와 수녀들은 생활비와 주거, 노후 생활, 질병 치료를 교구가 책임지기 때문에 주택을 소유하거나 재산을 모으지 않는 점을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 이유로 꼽았다. 특히 1930~40년대까지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타종교에 대해 지극히 편협하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이며 제국주의적인 자세로 선교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왔던 가톨릭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치며 ‘가톨릭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고, 갈라진 교회를 통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변했고, 한국 가톨릭에선 제사와 독특한 장례문화를 받아들여 유교문화에 젖어있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가톨릭으로 입교하겠다고 결심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고 보았다.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이자 실천신학대학원 석좌교수인 박영신 교수는 “마침내 교회의 성장 드라이브에 모두가 지친 것 같다”며 교회의 성스로움을 회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적했다. 그는 “바깥 사회의 성공 이야기를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는 교회에서 모든 것을 넘어서는 초월의 세계가 아쉽고 그리웠던 이들에게는 조용한 의례의 성스러움으로 모든 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길 건너 저쪽의 신앙 공동체가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이라며 교인의 머리 숫자와 헌금 액수, 교회당 건물의 크기 같은 세속적인 관심과 집중에서 벗어난 성스러운 교회의 회복을 주장했다.

조성돈 목회사회학연구소 소장은 개신교가 교회와 목회자의 과잉 공급으로 목회자의 질이 보장되기 어렵고, 목회자들 사이에 경쟁을 불러오며, 전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데 반해 가톨릭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쌓아 ‘브랜드화’에 성공했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전도를 신앙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만들어내는 신학화의 문제를 개신교에 대한 반감의 주요 이유로 꼽았다.

기독교는 구한말 지식인과 국민이 고개를 돌린 유·불·선의 기득권 종교로 변해가고 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모습은 어떨까. 이 나라에서 인권 탄압의 상징이던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사학의 비리를 줄이기 위한 사학법 개정 등에 반대하는 서울시청 앞 집회엔 늘 개신교 교회와 교인들이 ‘군중’으로 동원된다. 한국에서 기득권의 대변자를 개신교 스스로가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 개신교가 고려 말 불교나 조선 말 유교와 같은 기득권 종교로 이렇게 빨리 등장한 것은 ‘예수의 복음’이 아니라 ‘미국식 기독교’가 이 땅에 그대로 이식된 탓이 적지 않다.

미국식 성장주의, 패권주의, 승리주의 아래서 약자는 예수가 아흔 아홉을 뒤로하고라도 우선적으로 챙겼던 그런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배를 더욱 더 불리기 위한 먹잇감일 뿐이다.

물론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성경공부를 비롯한 많은 제자 훈련과 변화 프로그램들이 있고, 사랑과 봉사가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를 이끌어가는 상당수 목회자들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성장과 전도, 확장과 건축 등이다.

올해 ‘평양 대부흥 100돌’을 맞아 어느때보다 부흥이란 표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교회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들이 개신교에 보이는 불신을 극복할 수 있도록 초심을 되새기고, 이기주의에서 초기의 민족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식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런식의 ‘부흥 놀음’은 결국 전체 기독교인들을 늘리는게 아니라, 소수의 대형교회들만 갈수록 신자가 늘어나고, 다수의 골목 교회들의 고사만을 부추기고 있어 교회 내적으로도 냉소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물신주의와 이기주의, 기복주의, 성공제일주의가 산업화 시대엔 국민들과 함께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 사람들을 질리게 하고, 교회에 대한 혐오증을 낳고 있다. 이런 것이 변하지않는다면 전국민이 기독교화한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기독교로 볼 수도 없을 것이다.

물신주의와 함께 개신교가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배타주의다

현대사에서 평화를 위한 가장 구체적인 노력을 보인 인물 중 한명으로 인도의 간디를 꼽을 수 있다. 인도는 우리나라처럼 다종교 국가다. 80%의 힌두교인과 11%의 무슬림, 그리고 가톨릭과 개신교, 시크, 자이나, 불교 등이 혼재해 있다.

간디는 힌두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힌두교와 가장 적대적 관계인 무슬림에 의해 암살된 것이 아니라 같은 힌두교인에 의해 죽었다. 이교도는 적이고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배웠던 극우 힌두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간디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조차 죽였다.

필자는 2003년 9월 <한겨레>에 1년 간 자비연수를 신청하고 인도로 떠났다. 간디아쉬람과 그의 제자인 바노바바베아쉬람에서 지내며 그의 비폭력 평화의 정신을 함께 호흡했다. 그리고 간디의 뜻을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방갈로르의 메논아쉬람에서 며칠을 보내며 메논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깊이 있는 얘기를 하면서, 평생 종교 간 화해와 비폭력을 위해 노력해온 그는 대화가 깊어가자 간디언들조차 무슬림에 대해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고 고백했다. 무슬림들의 목표는 전인도의 무슬림화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극우 개신교인들은 이런 무슬림들과 다를까. 전혀 다르지 않다. 상대를 인정치 않는데 그치지 않고, 그 막강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폭력과 살상을 조장하고 있다.

이 세상에 무한 성장을 이루는 것은 암 밖에 없다. 다른 생명을 인정치 않고, 모두 자신과 같은 동질로 만드는 것이 바로 암이다.

한국 복음주의자들이 전도 만능의 환상을 전파하지만, 그런 환상을 깨고 있는 이들은 어쩌면 바로 자신들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용납지 않는 편협함으로 인해 장로회 한 교단이 100개로 분파된 게 한국 개신교의 현실이다.

이런 편협함이 한국에서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을 구분하고 있다. 이 땅에서 4분의 1인 개신교인이 섬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1990년부터 개신교 수가 정체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식 전도주의에 대해 비개신교인들이 식상하고 혐오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따라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며 자신들이야말로 한국 개신교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복음주의야말로 이제 한국 개신교를 죽이는 장본인이 되어가고 있다.

더구나 개신교는 다른 종교에 대한 불관용과 배타주의 뿐아니라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등에 있어서 기득권 논리만을 내세움으로써 공동체적인 모습보다는 한 이해집단으로서 면모를 강하게 내보이고 있다.

동양권에서 최초로 기독교가 안착한 한국에서 기독교의 사명은?

인도가 다종교 사회라지만, 실은 세계에서 한국만 한 다종교 사회가 없다. 불교가 들어오면 불교가 꽃을 피우고, 유교가 들어오면 유교가 만개하고,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면 그리스도교가 정착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근현대 민족의 수난기에 왜소해진 천도교와 증산도 계통의 민족 종교와 원불교 등 자생 종교, 50여 개의 예배처를 갖춘 이슬람교까지. 우리나라야말로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종교 박물관이다.

유대인과 무슬림이 대치하는 팔레스타인,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대치하는 카슈미르 등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전쟁의 절반 이상이 종교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 종교와 종교, 좌와 우가 만나는 한반도야말로 인류가 공존으로 가느냐, 파멸로 가느냐를 실험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아닌가.

한 나라에 하나의 종교만이 있는 나라에선 실상 태어나면서 종교가 정해져 다른 종교나 전통을 접할 기회도 없고 어울릴 기회도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다르다.

한 종교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기존의 문화와 언어, 종교와 핵융합을 일으키며 변화를 겪기 마련이다. 가령 필리핀처럼 기존의 종교 사상 문명이 확고하지않은 나라의 경우엔 선진국의 종교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종교가 로마로 갔을 때 많은 변화를 겪었고,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다른 종교 문화가 만들어졌다. 불교의 경우도 불교가 태어난 인도에 못지않은 자체적인 문명을 지닌 중국으로 건너갔을 때는 다른 종교라고 할만큼 다른 선(禪)으로 변화되었다.

우리나라는 기존의 종교 문명이 세계 어느나라보다 화려하게 꽃핀 나라다. 이곳에 기독교가 들어온다면 마땅히 이 땅에서 회통할 수 있는 기독교 문명이 창출되어야 한다.

덴마크의 개신교 지도자이자 국민 영웅인 그룬트 비가 덴마크는 덴마크의 역사와 언어를 통해 부흥해야 한다고 했던 것에 주목했던 것을 제대로 새겨봐야 한다.

더구나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건너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은 이후 핍박받는 식민지국 유대땅에서 태언나 기독교는 제국의 종교, 황제의 종교가 되었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세계 전파도 유럽과 미국 등 세계를 제패한 제국들의 힘에 의존했다.

지금 미국에 이어 세계 선교사 파견 2위국으로 떠오른 한국의 역사는 지금까지 선교 주도국들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은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이며, 팔레스타인이다.

한국기독교는 초기 기독교의 순수성을 회복해야한다

우리나라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국가와 개인의 엄청난 시련 속에서 전존재를 걸고 고뇌했던 유학자들과 선각자들이었다. 그들은 식민지국 백성에게 희망을 주는 구약과 신약의 공동체성, 이웃 사랑 등을 받아들였고, 기존의 유·불·선의 인륜과 예의, 도덕을 합쳐 독특한 동양 기독교의 모습을 낳았다.

그러나 개신교가 급성장하고, 산업화의 변화를 겪으며 한국 기독교는 미국보다 더 미국식 기독교만이 자리잡게되었다.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의 제국들과는 달리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수없는 외침과 핍박을 받아온 역사적 위치에 있었음에도 세계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의 상당수가 오히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보다 더 제3세계 사람들을 멸시하고 공격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주변 강대국에 의해 수없이 짓밟히고 신음한 고난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야말로 서양과는 다른 방식으로 약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진정한 벗이자 봉사자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닌가. 로마에서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잃어버린 약자와 함께하는 종교의 모습을 되찿아야하는 것은 독특한 역사를 지닌 한국 기독교가 해야할 사명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가톨릭은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반면, 개신교는 넘어진 자를 돌보기 전에 나라도 멀리 뛰자는 성장제일주의만이 팽배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 기독교가 신앙적으로는 물신주의에서 성공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사람들을 평안하고 화해하고 행복하게 하는 영성주의를 가꾸고, 한국 공동체에선 분단과 갈등 조장자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처럼 민족을 깨워 하나되게 하려는 선각자와 예언자로 깨어나야 한다.

또 세계 유일의 다종교 사회에서 회통과 화해의 문명과 문화로서 종교 간 반목과 갈등에 신음하는 세계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전세계적으로는 세계를 종교 사상적으로 지배하려는 제국적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모두를 사랑으로 포용하고, 약자를 포옹해주는 예수의 사랑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성소로 거듭나야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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